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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Aug 05. 2019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계산을 해 보니 1년 8개월동안 내가 쓴 생리대는 단 2개, 탐폰은 3개였다.

생리컵이 아니라면 이 기간동안 최소 280개의 생리대가 필요하다.


어떤 분은 생리컵에 금새 익숙해지니까 어렵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밖에서 생리컵을 비우거나 갈아본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는 내가 프리랜서라는 점이 눈물나게 감사하다.


많은 블로그를 읽어보니 밖에서도 멋지고 깔끔하게 생리컵을 비우는 분들이 많았지만 나는 겁나서 못하겠다.

실수했을 경우 튀거나 흘린 피를 닦을 물티슈나 샤워기도 필요하고

초조하거나 서투르면 미끄러지거나 몸 안에서 생리컵이 구겨져 안 펴지기도 한다.

빼낼 때 잘못해서 연한 살이 손과 컵사이에 끼이기라도 하면 매우 아프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처음 몇 달은 생리컵을 끼우거나 빼낼 때 다섯번은 실패해야 성공할 수 있었다.

실패를 거듭할 수록 상대적으로 얇은 피부는 얼얼해진다.


그렇지만 나는 기를 쓰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했고 이젠 (거의) 완전히 익숙해졌다.

마치 왼손 글쓰기처럼.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생리컵의 장점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 초반 3일동안 몸져 누울 만큼 심했던 생리통이 5분의 1로 줄어드는 기적을 겪었다.

2. 화학성분이 전혀 없다. 진통제도 필요 없다.

3. 밤에 생리가 새서 이불이나 옷에 묻을까봐 잠을 설치는 일이 없다.

4. 눕거나 앉으면 생리가 샐까봐 몸을 일자로 경직시키지 않아도 된다.

5. 마구 옆으로 눕거나 심지어 엎드려 잘 수도 있다.




무엇보다 환경에 좋은 건 내 몸에도 좋다고, 나는 여전히 굳게 믿는다.

그래서 매달 생리컵을 열탕 소독하는 작은 수고를 하고 창가 햇볕에 말리며 생각한다.


만약 생리컵을 개발하고 만든 사람들을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무릎을 꿇고 감사 인사를 하자고.

원한다면 업어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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