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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Jul 22. 2019

나의 강아지

여전히 재채기 할 때 옆구리와 갈비뼈가 당기긴 하지만 근육통은 나아가고 있다.


활짝 열어놓은 거실 문으로 야트막한 산이 보이는 덕분에 새소리가 듣기 좋다.

그런데 지금쯤 그 소쩍새는 어디서 자고 있으려나.


약 한달 전부터 정겨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밤 10시쯤부터 새벽 두 시 쯤까지.

어릴 때 시골에 놀러가 잘 때면 종종 듣던 그 소리여서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본 결과 소쩍새라는 걸 알았다.

그 후로 거의 매일 밤 베란다에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베란다로 저녁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지금 여기서 충분히 행복하면서도 어딘가 다른곳으로 가고싶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가 늘 상상하는 그 곳은 땅에 닿아있는 집이다.

지금의 아파트처럼 쾌적하지도 않고 벌레도 있지만, 확실히 땅에 맞닿아 있는 집이다.

내가 방에서 맨발로 서 있으면 땅의 기운이 느껴질 만큼.

그리고 작은 텃밭에는 나무 몇 그루와, 여름에는 채소꽃 위로 벌이 찾아 올 것이다.

나는 아침 텃밭일을 끝낸 후 작은 야생초를 꺾어 물컵에 담가 탁자에 놓아두고 틈틈히 눈길을 쉬게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강아지 한 마리.

내가 책임지고 내가 끝까지 보살필 내 친구. 내 가족. 

헤어지지 않을 내 강아지를 키울 것이다.







어릴 때는 강아지를 아무 생각없이 기르며, 혼을 내기도 괴롭히기도 했다.

좋은 주인이 되어줄 만큼 마음이 성숙하지를 못 했다.

그마저도 정이 들라치면 아버지가 상의도 없이 하루아침에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셨다.

털이 날리는게 건강상 안 좋다는 이유였는데 그럴거면 처음부터 왜 키우게 놔두셨을까.



내 마지막 강아지도 그렇게 하루 아침에 학교에 다녀오니 인사도 없이 이별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편이었고, 나는 내 편도 없이 혼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슬퍼 울다가 엄마에게 가서 부탁했다. 내 강아지를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거의 울면서 한 그 말이, 내가 엄마에게 진심으로 부탁한 몇 안되는 때였다.

엄마는 그만하라며 내 말을 자르고 내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강아지에게 상상으로 말을 걸었다.

많이 무섭지. 내가 널 버린건 아니야. 내가 3년만 지나서 성인이 되면 그때는 반드시 널 찾으러 갈게.

라고. 상상으로 약속했다.

결론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강아지가 정확히 어디로 보내졌는지도 잘 몰랐고, 나는 더 이상 부모님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내 강아지가 어디선가 배가 고프거나 미움을 받거나(모두가 예뻐하는 강아지는 아니었다) 떠돌아다니며 아파할 것을 생각하면 그 무력하고 슬픈 감정을 쏟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쏟아부으며 자책을 했다.

그렇게 신나게 나를 질책하다가 남들에게만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피곤해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무척 작고 생쥐같았던 내 강아지는 곱창 머리끈으로 만든 갈기가 잘 어울렸다.





얼마 전, 자기 전 명상을 하며 갑자기 잃어버린 내 강아지 생각이 나 한참을 울었다.

스무 살 이후로 내 강아지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너무 아픈 기억이었으므로.


'속상했어. 아팠어. 혼자였어. 미안했어'라고 호소하는 내 자신을 안아주며 울다 잠이 들었다.

눈물이 옆으로 흘러내려 귓가로 고이는게 느껴졌다.



나는 꿈을 종종 구체적으로 꾸는 편인데 내 강아지는 한번도 내 꿈에 나와 준 적이 없었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한걸까. 아니면 잊은걸까.



사실은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린아이와 함께 자라는 강아지 이야기.

개는 늙어가고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어, 강아지였던 늙은 개의 마지막 날을 지켜주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아마도 내가 땅에 닿은 그 집에 살면서

나의 새 가족인 강아지를 데려와 평생 함께하기로 다짐했을때,

그때서야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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