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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Jul 16. 2019

내가 운동을 하다니

온 몸이 뻐근해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어제 할일도 제대로 못하고 일찌감치 푹 잤는데도 뼈와 근육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어제 오후, 우리 발레선생님이 일하시는 곳에서 생에 처음으로 필라테스를 해 봤다.

집이랑 멀어서 다시 가긴 힘드니까 체험할인 2번을 몰아서 2시간 연속을 선생님이랑 1:1로 진행.


나는 평소에 하루 적어도 20분은 스트레칭이나 근육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일주일에 한 두번 가는 발레도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 내가 그렇게까지 무너질 줄은 몰랐다.







내 골반은 여지없이 비뚤어져 있었고 배 근육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오른쪽 다리는 미는 힘이 약해 자꾸 왼쪽으로 기대려고 했고, 

발레 때 두 발의 턴아웃에만 욕심내고 연습하다보니 정작 턴인(11자로 발바닥을 앞으로 향한) 에 쓰이는 근육이 한없이 약했다. 중간 등 근육은 외외로 뻣뻣해서 선생님도 놀랄 정도였다.


1시간 좀 넘게 진행하고 똑바로 서서 손에 볼을 쥐고 거울을 보며 자세를 교정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지며 선생님의 말이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숨이 갑갑해지고 허리가 굽으며 마치 귀에 뭔가를 한 겹 더 씌운 것만 같은 익숙한 느낌.

이건 공황 발작때 증상인데?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물을 마시고 앉아 몇 분 쉬었더니 다행히 가라앉았지만 

그때부터는 땀을 비오듯 흘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멋진 시범을 멍하니 보고, 다른 기구들을 하나하나 따라 했지만 무슨 정신으로 끝난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올 땐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자리가 없어 지하철 문에 기대듯 버티며 왔다.








내가 아직도 이렇게 저질 체력이구나...이제는 체력이 좀 강해진 줄 알았는데.

어릴 때부터 나는 허약하고 입 짧은 아이였다.

그리고 불안해지면 책상밑으로 기어들어가 쪼그린 채로 책을 읽었다.

가족들이 나를 불러도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어둡고 좁은 곳에 조용히 웅크린채로 있자면 나는 안전하다고 느꼈고 중학교때까지도 그런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힘들어보이고 약해보인다는 말을 밥 먹듯 들으며 학교에 다녔고, 체육시간과 체육대회가 세상 싫었다.

특히 햇빛이 쏟아지는 날은 어지럽고 힘들었었다.


그러다 스물 일곱에 처음으로 내 손으로 직접 스포츠 센터 등록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 무렵 하루가 다르게 심각하게 살이 찌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살이 찜과 동시에 내가 그 친구에게서 좋아하던 생기 넘치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삐딱하고 부정적인 태도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괴로웠었다.

나는 친구를 설득해 가볍고 재밌게 해보자며 같이 재즈댄스를 등록했다.


첫 세 달은 근육통의 연속이었다.

친구는 통통하긴 해도, 타고나기를 유연하고 끼가 많은 타입이라 금새 춤에 익숙해졌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스무명 쯤 되는 클래스에서도 가장 뻣뻣하고 구부정한 사람에다가 선생님도 신기해하는 박자치였다.

그 무렵 거의 매일 일어날 때 몸의 어딘가 아팠다.

아팠지만 즐거웠고 잘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매주 같이 재즈댄스를 다닌게 4년이나 되었고 친구는 다시 다신감 넘치는 예전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도 많이 유연해지고 많이 능숙해졌다.(사람됐다)









친구가 목적을 잃고 춤을 그만 둔 뒤에도 나는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재즈댄스를 했다.

그렇게 혼자 춤을 추던 어느 날, 내가 진짜 하고 싶던 건 발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내 재정 상태는 바닥이었고, 성인 발레 레슨비는 꽤 비쌌다.

그래도 정말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처음에는 멀리까지 다녔다.

수업 하나 하나가 나에게는 낭비되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온 몸으로 배우고 집에서는 연습도 많이 했다.


운동을 꾸준히 한 만큼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체력이 많이 나아졌다.

발레에 처음 가던 날, 나는 그때까지 배운 재즈댄스가 어느정도는 도움이 되겠지 싶었지만

발레는 전혀 생소한 근육들을 쓰는데 놀랐었다. 재즈 때와는 다르게 하반신 근육통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필라테스를 처음 가던 어제, 실은 내가 근육을 제대로 쓰는게 거의 없다는 것에 놀랐다.

제대로 근육을 쓰며 두 시간을 움직인 나는 후들후들 쓰러질 뻔 했다.

그렇다면 다른 춤이나 운동들도 그렇다는 얘기겠지... 사람이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강요하던 운동이나 체육시간에 의무적으로 하는 달리기에는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그건 나에게 큰 스트레스였고 운동에 대한 선입견만 갖게 할 뿐이었다.

성인이 되어 감사한 일은 모든 것이 자발적이라는 사실이다.

학생 때에 비하면 너무나도 자유롭다. 

내가 선택하되 내가 책임진다. 그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선택을 스스로 결정한다.

게다가 주체적으로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그 순간은 명상 할 때처럼 이 세계와 하나가 된 느낌을 준다.




나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내 몸을 컨트롤 할 줄 알게 된 아이가 아무 목적도 없는 축하의 춤을 추는 이야기

나무와 새들과 계절과 함께.

살아있는 오늘을 축하하는 춤을 추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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