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나 Jul 11. 2019

그저 지켜보며 허용하는 일

아름다운 계절이다.

오늘도 공기가 좋아서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구름은 새나 오리 모양이 많이 보인다.





어제 오후, 우체국에 다녀오는길에 세 번째 야외명상을 했었다.

우리집과 우체국 사이에는 언덕이라고 해도 될 만한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작지만 나무가 빽빽해서 오르막이 힘들더라도 꼭 그쪽으로 걸어오게 된다. 

나무 계단에 새로 떨어진 까맣게 반들거리는 익은 버찌를 주워 흙으로 던지며 걸었다. 

사람들에게 밟혀 뭉개지면 곤충이나 새가 먹을 수 없는 형태가 되고 만다. 싹도 틔울 수 없고.


비온 다음날이라 젖은 나무 냄새가 너무 좋아 소나무 옆 벤치에 앉아 쉬었다.

주변엔 운동하시는 할아버지들과 다른벤치에 앉은 어머님들도 보였다.

벤치에 앉으니 발이 완전히 땅에 닿지 않기에, 신발을 벗고 다리를 올려 명상을 시작했다.

앞서 공원이나 뒷산에서 한두번 해 봤더니 이젠 사람들 시선도 크게 신경쓰이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눈을 감고 있으면 안 보인다. 의외로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


과거의 내가 했거나 하지 못한 일들, 미래의 내가 해야할 일들을 부드럽게 주워담아 생각밖으로 미루어 둔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공기와 새들의 소리, 내 호흡과 내 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10년전의 술만 마시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말 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 그때의 나는 이런 식으로 말 할 것이다.

"명상? 좋지. 근데 그런 걸 해 봤자 현실에서 뭐가 달라지는데?

나 혼자 열심히 해도 결국 그런 자기최면은 얼마 안가 지쳐버린다니까"

그 때의 뾰족뾰족하고 외로움으로 지쳐 있던 나를 안아주고 싶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의 책과 심리학 책을 찾아 헤매던 나를.

괴로워 괴로워라고 매일 일기에 적던 나를.

언제든 상대가 화를 낸다면, 누구보다 더 맹렬하게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던 나를.




엊그제 주문한 토마토들이 자꾸 물러지면서 날파리가 생겨가는 걸 보다 못해 토마토 소스를 만들었다.

토마토에 열 십자 칼집을 내어 물에 데쳐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주홍빛으로 말캉말캉해진 토마토의 꼭지를 떼고 큼직하게 다져 함께 냄비에 넣어 불을 켰다.

오일과 버터로 볶은 마늘과 양파를 넣고, 작년에 담가 둔 풋토마토청도 넣고, 소금 후추도 넣었다.

바질이 없어 냉동실에 보관해둔 샐러리 잎을 넣고 끓인다.

졸아 들 때까지 저으면서 끓였다.


이 모든 과정을 하면서 나는 되도록 잡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칼질 할 땐 칼과 토마토의 감촉, 쪼글쪼글하게 불어버린 내 손의 감촉에 집중한다.

마늘과 양파를 깔 때는 그 반짝이는 고운 알맹이를 바라보고, 씻겨두면 더 고와진 빛깔에 감탄한다.

이런 일을 할 때 미래의 걱정이나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면 잘려나가는 채소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문을 잠글 땐 오직 문을 잠그는 것에만, 그림을 그릴 땐 그려지고 있는 그림과 나의 의도에만.

이런 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한 명상이다.




내가 가장 힘든 것은 뜻대로 되지 않을때의 현재에 존재하기이다.

그려야 할 그림이 많은데 손에 잡히지 않고 몸을 일으키기조차 싫을 때,

몸에 나쁜 거 뻔히 아는 사이다와 햄버거가 마구 먹고싶어질 때,

그만 자야 하는데도 큰 의미없이 이런저런걸 꺼내며 시간을 끌 때,

남에게 상처되는 말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반대로 남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대하는 행동이 나에게는 너무 버거울 때,


이럴 때 예전의 나는 현존이고 뭐고, 감정에 이끌려 다니면서 익숙한 행동을 했다.

그래, 원래 나는 이런 인간이었지. 이제와 새삼 뭘 바꾸겠다고.

나는 원래 운이 없고 약해 빠진 사람이지, 이러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화풀이를 했었다.


이제는 이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내 행동을 그저 지켜봐주고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혼을 내거나 혼나고 싶어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건 잘했고 이건 잘못했다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그저 허용한다.







얼마 전 수요일에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냉방이 너무 센 실내를 느끼며 가방에서 가디건을 꺼내 입으면서, 요즘 읽는 책도 같이 꺼냈다.

그 책은 도서관에 갔을 때 무작정 책등만 보고 마음이 끌려 한 번 펼쳐보지도 않고 빌려온 책이다.

여자분 혼자서 발리에 가서 명상 해보는 여행기.

그 책을 세 페이지 정도 읽고 나서 설레는 마음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덮었다.

그리고 무너지고 있는 조각케이크를 다 먹고나서 물을 반 컵 마셨다.

'너는 발리에 가게 될 지도 몰라'

누군가 말해 준 것처럼 느껴져 그게 그냥 내 소망인지 아니면 예감인지 모른 채 그저 가슴만 두근거렸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

혼자서 한 달을 고요히 명상하며 내 하루를 나만이 이끄는 대로 다 써도 되는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그 곳에서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돌아올 수 있다면.

아무 계획도 아무 생각도 없지만, 나는 정말 발리에 가게 될까?

그냥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호기심에 가까운 마음으로 내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





나는 이런 식으로 쓰고 싶었다.

자기를 저주하고 세상을 저주하던 불행한 여자아이가

결국 불행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과 감정은 나와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는 곧 평화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을 오히려 도울 정도로 평화로워진다.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대로 마음을 쏟지 못했을 경우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