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치마 아주머니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친구이자 가족은 바로 작은 정원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는 없었지만
아주머니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대신 풀의 색깔, 나무의 향기, 열매의 크기, 벌레의 종류로
말을 걸어오는 정원의 소근거림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벌레도 아주머니의 정원에서는
똑같이 소중한 가족이 되었고
아무리 시들시들한 화초도 아주머니가 정성껏 돌보면
이내 싱싱한 새 잎을 뻗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도구들을 정리하고 나서
늘 하던대로 정원을 천천히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물주는걸 잊은 곳이 없나, 하고 걸으며
마음 속으로는‘모두 잘 자라!’인사하는 이 시간이
아주머니는 하루 중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정원의 낮은 철제 담장 너머로
누군가 서 있는게 보였습니다.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서 있는 사람은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었는데
그 옷은 유행이 아주 지나 있었습니다.
“ 제 약혼녀를 만나러 왔습니다 ”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 아마 집을 잘못 찾으셨는가봐요. 여긴 저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청년은 안타까운 눈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 저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다렸답니다
부디 도와주세요. 저는 언덕 위 소나무 쪽에서 왔답니다 ”
아주머니가 언덕 쪽을 바라보는 사이에
청년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정원에 나온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석류나무 옆 한쪽에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이름 모를 꽃 한 포기가 피어 있었습니다.
햇빛을 닮은 꽃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습니다.
아주머니는 어제 저녁에 찾아왔던 청년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얼른 언덕 위로 가보았습니다.
언덕 소나무 밑에는 한 아저씨가 앉아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보고는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천년 꽃이 한 송이 피었군요.
실제로 보는건 저도 처음입니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 어젯밤 일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꽃을 정원에 옮겨 심겠다는 결심도 함께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자리를 툭툭 털었습니다.
"제가 가끔 천년 꽃을 보러가도 괜찮을까요?"
아주머니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따뜻한 차를 준비해 둘께요"
꽃을 옮겨 심은 그날 밤, 아주머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아주머니는 정원 담장에 나란히 서 있는 다정한 연인을 보았습니다.
"저희를 만나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긴치마 아주머니는 꿈을 꾸면서도 싱긋 웃었습니다.
얼마 후, 이 정원은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아주머니의 정원을 혼자 걸으면 소중한 인연이 나타나고
누군가와 같이 걸으면 오랜시간 함께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기 때문이죠.
아주머니에게도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생겼습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정원을 가꾸고 함께 간식을 먹기도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항상 정원 문을 활짝 열어두었습니다.
누구라도 들어와서 행복한 정원을 걸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천년 정원
2013 ⓒ카나
kanakent.blog.me
instagram.com/kana_illust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