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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Oct 26. 2022

나쁜 습관 버리기 : 아이스크림 끊기

22.10.26

나는 저녁 식사 후 아이스크림을 먹는 습관이 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이 건물 밖에 있으면 모르겠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출입 가능한 곳에 있는터라 큰 심리적 장벽 없이 충동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매번 저녁을 먹으면서 다짐한다. 밥 먹고 아이스크림 사러 가지 말아야지. 밥을 적게 먹어서 그 빈 공간만큼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는가 싶어서 언젠가부터는 저녁 시간에 반찬을 잔뜩 먹어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배가 정말 불러서 더 이상의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도 밥을 다 먹고 나면 아이스크림 생각이 난다. 달고 차가운 무언가를 먹고 싶은 충동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는 그만 먹자고 생각하고 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엘리베이터는 어김없이 편의점 냉동고로 나를 안내한다. 


저녁식사 이후 아이스크림 먹는 충동을 이길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보니 월 단위가 아니라 연 단위로 이어진 습관의 고리를 이어오고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나서 생각한 건 아이스크림을 한 개만 먹자 였다. 편의점에 가면 1+1 상품이 존재한다. 특히나 아이스크림의 경우 무조건, 백 퍼센트 1+1 상품이 존재한다. 그렇게 두 개를 사 오면, 두 개를 먹는다. 한 개를 먹고 나면 냉동고에 남겨진 나머지 한 개 생각이 너무나도 간절해진다. 배가 아무리 부르고 아이스크림의 단맛이 입안 가득 남아있어도 상관없다. 남겨진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충동에 빠지는 것이다. 


언젠가는 두 개를 사 오더라도 한 개만 먹자. 고 생각했다. 이 결심은 하루를 못 가고 실패했다. 두 개를 사 오면 두 개를 먹고, 세 개를 사 오면 세 개를 먹게 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한 개만 산다면? 그것도 불가능했다. 도저히 1+1 상품중 하나를 두고 올 수가 없는 것이다. 편의점 전용 어플 등을 이용해서 나머지 +1을 저장하는 것 역시 가능하지만 막상 편의점 냉동고를 열었을 때 한 개만 꺼내 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저녁식사 후 아이스크림 먹는 습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나였지만, 정말로 이 습관을 끊고 싶었다. 날씬한 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온몸에 가득한 군살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나날이 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스크림의 공이 지대했다. 매일 계단을 18층씩 오르고, 턱걸이 개수가 늘어나도 아침 출근길 벨트 구멍은 점점 뒤로 밀려날 뿐이었다. 아이스크림을 간절하게 원하는 나와, 습관을 끊고 싶은 나의 싸움. 무의식은 나를 편의점 냉동고로 이끌고 의식은 내가 편의점을 끊기를 원한다. 그 둘의 싸움은 백전백승, 무의식의 승리였고 백전백패, 의식의 패배였다. 


생각을 다시 해 봤다. 무엇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반드시 먹을 수밖에 없을까. 내가 아이스크림에 끌리는 핵심적인 속성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것은 두 가지였다. 


1. 차가운 것

2. 단 것


차갑고 단 것의 환상적인 조합. 그것이 아이스크림이었다. 저녁 식사 이후 차갑고 단 것을 무조건 먹어야 하는 나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편의점에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된 그 시점부터가 아니었을까. 공간 자체를 당장 바꾸기는 힘들기에, 습관을 바로 없앨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제를 공급하면 어떨까? 아이스크림 대신에 먹을 수 있는 차갑고 단 음식.


내 선택은 음료수였다. 차갑고, 달달한, 음료수. 어떤 음료수를 먹어도 아이스크림을 1+1으로 두 개씩 먹는 것보다는 건강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왕 먹는 김에 설탕이 빠진 제로 시리즈로 먹자고 생각했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고 단맛을 내는 음료를 음식과 함께 먹으면 설탕 유무와 관계없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음식과 같이 먹지 않으면 인슐린 분비가 적다는 결과도 있다. 물론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입맛대로 고른 연구결과다. 물론 반대의 결과도 존재한다. 설탕은 없지만 뇌에서는 단맛을 인지해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경우 결국 인슐린 분비로 인해 혈당이 올라가기에 당질을 제거한 음료를 먹는 이유가 딱히 없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아이스크림 1+1 두 개를 한 자리에서 해치우는 것보다는 낫다. 참고로 메로나 1+1 아니고 콘 아이스크림 1+1이다. 너무 돼지처럼 보일까 봐 말하지 않았지만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1+1 상품이 없으면 2+1 상품을 사서 한 자리에서 세 개를 처치한 적도 여러 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거면 아이스크림의 유혹을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로 여러 무설탕 탄산음료를 검색했고, 주문했다. 냉장고에 쌓아두고 아이스크림이 당기는 저녁식사 이후 이 녀석을 한 캔씩 먹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2주 동안 나는 아이스크림을 한 개도 먹지 않았다. 다만 냉장고에 들어있는 캔음료의 개수가 줄었고, 분리수거하러 가는 길에 캔 부딪히는 소리가 추가되었다. 내가 원하는 건 아이스크림 그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저녁 식사 후에 느끼는 달콤한 디저트. 따뜻한 음식을 먹은 뒤 만나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청량함.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이 바로 탄산음료. 어찌 됐든 칼로리도 없다는 점이 마음을 안심시키게 만드는 포인트다. 


저녁 식사 후 무조건 아이스크림 1+1 두 개를 잡수던 나는 이제 없다. 욕심 같아서는 디저트를 아예 먹지 않게 되는 경지까지 오르고 싶지만 그것은 아직은 큰 욕심이다. 지금 상황에 아주 만족한다. 아이스크림을 끊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작년 여름, 큰맘 먹고 아이스크림을 끊었던 3개월이 있었다. 아이스크림만 끊었는데도 몸무게가 7kg 이상 감량하는 경험을 했었다. 그때의 느낌을 되찾고 싶어서 이렇게 저렇게 많은 시도를 했지만 이미 체화되어 버린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처음에는 졸졸 흐르던 냇물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세가 불어나고 물살이 급해진다. 냇물은 강물이 되고 강물은 급류가 된다. 오랜 시간 탄탄하게 형성된 수로를 단번에 끊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냇물 수준에서야 가능하지만 강물 이상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럴 땐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향하는 길을 탄산음료로 돌렸다.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딱 한 두 개 남아있을 때는 나머지를 마저 먹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지금은 냉장고에 쌓여있는 게 캔이다 보니 한 개를 먹으면 딱히 더 먹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쁜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두 단계가 필요하다.


1. 물줄기 바꾸기

2. 물줄기 약화시키기


대체제를 찾아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고, 점진적으로 물줄기를 약화시키는 방법이다. 나는 일단 물줄기를 방향을 바꾸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다음은 물줄기 약화시키기다.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캔 사이즈를 줄여 나가는 것. 그리고 그 빈도를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물줄기를 약화시키면서 결국에는 단 것에 대한 의존도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습관을 새로 만드는 건 여럿 해서 자신이 있었지만 나쁜 습관을 끊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나 무언가를 새로 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걸 없애는 게 훨씬 더 힘든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나쁜 길을 들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그리고 이미 형성된 길을 바꾸는 것이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것. 마음에 새기고 편안히 잠자리에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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