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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Dec 10. 2022

우리 사회는 완벽주의를 강요한다

우리 사회는 완벽주의를 강요한다. 1등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다. 어렸을 때부터 1등, 1등, 1등 만을 부르짖는 부모와 선생, 그리고 신문과 9시 뉴스를 반복적으로 접하며 커온다.


올림픽에서도 완벽주의 사회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어떤 종목의 경기든 금메달이 아니면 매우 아쉬워한다. 메달 집계 순위도 금메달이 최 우선시된다. 금메달이 0개라면 은메달, 동메달이 아무리 많더라도 금메달 1개에 순위가 밀린다. 자연스럽게 1등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하는 인식을 학습한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까? 1등 바로 뒤에는 2등이 있다. 2등 뒤에는 3등이 있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는 2등부터 꼴등까지는 다 똑같다는 말과 같다. 2등과 꼴등을 퉁쳐버린다. 2등과 꼴등을 퉁쳤을 때 가장 이득 보는 사람은 누굴까? 바로 꼴찌다. 


2등과 꼴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2등은 1등은 되지 못했지만 1등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고 있다. 운에 따라서는 충분히 1등이 될 수도 있는 실력자가 2등이다. 꼴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1등 만을 기억하고 2등은 애써 외면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1등 지상주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 1등 지상주의는 완벽주의와 같은 개념을 공유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인 완벽주의는 1등 지상주의보다 더 엄격하다. 1등을 하더라도 100점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게 완벽주의다. 완벽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고 이야기한다. 완벽주의의 규율을 학습시키면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 1등과 꼴찌를 같은 범주로 묶었을 때 꼴찌가 이득을 보듯이, 완벽의 정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이 이득을 본다. 


우리 사회가 1등을 제외한 절대다수를 하나의 울타리에 몰아넣고, 완벽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뭉뚱그려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하려는 의도는 하나다. 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지금의 체계를 만든 기득권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1등이 아니면 다 똑같다는 물타기를 통해 본인들의 치부를 감춘다. 배고픔에 견디다 못해 빵 하나를 훔친 장발장에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절도죄로 감옥에 집어넣는다. 빵 하나를 훔쳐도 절도는 절도이며 법에 기반한 판결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본인들이 저지른,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스케일의 금융 범죄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하다. 심지어는 범죄 행위에 대해 기소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법정에서 잘잘못을 가릴 건덕지 마저 사전에 제거해 버린다. 


5천 원짜리 빵을 훔친 것과 국고 5조 원을 횡령한 것을 뭉뚱그려 절도라는 단어 아래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나도 훔쳤고 너도 훔쳤으니 똑같이 잘못한 것일까? 잘못에도 경중이 있다. 바늘 도둑이 있고 소도둑이 있다. 둘 다 도둑이지만 엄연히 그 스케일이 다른 것이다. 손가락 끝을 살짝 베이는 것과 손모가지를 뭉텅 잘리는 것은 삶과 죽음을 가를 만큼 크나큰 차이가 있다.


완벽주의에 기반한 물타기는 정치 공세에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 물증도 증언도 필요 없이 심증만으로 '나쁜 놈'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 그것 자체로 성공이다. 나쁜 놈은 크게 나쁘나 작게 나쁘나 매 한 가지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사회 전반에 깔려있기에, '나쁜 놈'이라는 낙인은 과거에 기득권이 저지른 크고 작은 '나쁜 짓'에 연결된다. 이 '나쁜 짓'의 계보는 그 깊이와 넓이가 대단하기에 누구든 그 계보에 연결되기만 하면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뉴스의 본질이 어떻든지에 관계없이 자극적인 수사에 끌리게 된다. 이 자극적인 수사가 권위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거나, 공신력 있다고 생각되는 언론에서 다루어지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도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언론과 검찰, 정치인, 법조인, 교수, 각종 전문가 집단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어떻게든 '나쁜 놈'이라는 낙인을 찍으려고 애쓴다. 검찰에 소환된다는 뉴스만으로도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고 생각한다. 실체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나쁜 놈으로 지목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잘못이 크든 작든 아무튼 잘못했으니 불려 간 게 아닌가. 정말 깨끗했다면 저런 말이 나오지 않았겠지.라고 받아들인다. 검찰의 타깃이 된 것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범죄의 이력을 연상시킨다.


그 결과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몇몇 사람들의 상충되는 증언만으로, 혹은 의혹 기사만으로,  한 사람의 정치 생명을 끊어버리거나, 심하면 자살을 유도하기에 이른다. 한 사람의 정치인을 꺾어내면 그가 속한 당에 입히는 타격은 엄청나다. 세력 자체를 꺾어 버리고 정권을 탈취하기에 이른다. 


완벽주의 프레임 안에서는 착한 놈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나쁘지만 너도 나빠. 내가 더럽지만 너도 더러운걸? 정치인은 다 똑같아. 원래 그 자리에 가면 다 그렇게 하는 거야. 저 사람도 깨끗한 줄 알았지만 별 수 없네. 오히려 저 자리에서 저 정도는 해먹을 수도 있지. 물타기에 물타기가 이어지고 기득권의 범죄 행위를 당연시한다.


이것이 완벽주의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완벽주의 사회가 유지됨으로써 낳게 되는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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