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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Dec 24. 2022

욕심에 눈이 멀어 버린 사이 일어난 일에 대하여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욕심에 사로잡히면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수많은 경보 알람이 깜박이고 사이렌이 울리지만 애써 무시하게 된다. 그러면서 억지로 찾아낸 한 마디 긍정적인 문장에 꽂혀서 그것을 믿어버린다. 아무 근거 없이 믿어버리기로 결정한다. 믿음이야말로 모든 것에 우선하는 힘이 있는 것 아니냐며 포장해 버린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믿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갖는 게 맞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믿음은 영 허황된 것이 아닐 수 없다. 


개똥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어떤 보물이 들어있는 것만 같이 꾸미는 것과 같다. 겉 포장이 어떻든지에 상관없이 화려한 포장 안에 들어 있는 건 가치가 있는 보물이 아니라 냄새나고 썩어가는 개똥일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코로나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금융 당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금융 완화 정책을 쏟아부었다. 금리 인하를 통한 금융권에 대한 간접적인 재정 지원, 채권매입을 통한 직접 재정 지원이 있었다. 이례적으로 금융권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정부 지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 그리고 가계에 직접 꽂아주는 현금지원까지 토털 패키지로 현금과 신용 팽창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대공황 이후 90년 만에 찾아온 미국 GDP -3.5% 역성장은 2020년 한 해로 끝났다. 주식시장에는 이미 선반영 되어 2020년 3월 저점 확인 후 V자 반등하여 2020년 4월 말에는 이미 폭락 이전 수준을 회복한 지 오래였다. 그다음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2021년 11월까지 시장은 역대급 상승을 보여주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구독자 수 100만을 달성한 경제 유튜버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기업화에 성공하여 상장을 앞둘 정도로 체계를 갖추고 규모를 키운 채널도 나타났다. 업계에서 일하는 전문가, 나름대로 성공한 슈퍼개미, 초심자의 행운이 크게 찾아온 주린이 할 것 없이 이런저런 매체에 등장해 본인의 성공스토리를 풀어놓고 주식시장에 관한 견해를 내놓기 시작했다. 


주식과 부동산 공부 열풍이 불었다. 새로운 시장 참여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일반 투자자들 계좌가 몇 개가 늘었다느니, 투자 예치금이 몇조 수준이라느니, 동학개미가 외국인을 이겼다느니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장의 과열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각국의 부채 수준과 GDP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시장의 하락을 전망하는 사람, 금리 인상의 임박을 경고하는 사람, 기술적 분석을 통해 지금의 상승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거품이라는 사람을 비롯해 과열의 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다 끝난 뒤에 돌아보면 당연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런저런 이론이나 역사를 몰라도 상관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주가가 언젠가 떨어질 거라는 건 세 살 배기의 통찰로도 충분했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해가 뜬다는 건, 세 살 배기도 안다.


시장이 영원히 폭발적인 급등을 계속할 수 있을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렇게 급등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돈을 집어넣어야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피라미드를 높이 쌓기 위해서는 아랫부분의 면적이 넓어야 한다. 10층의 피라미드가 11층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맨 꼭대기의 1층 영역에 해당하는 벽돌이 아니라 가장 아래에 분포한, 가장 넓은 기초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주가의 고공행진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역시 막대한 현금흐름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붕괴는 자명하다. 그러나,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욕심으로 점철된 목표 수익률이 눈을 가렸다. 


다 지나고 나서 후행적으로 그려보는 100년간의 주가차트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차피 주가는 우상향 하게 되어있다. 역사적으로 어느 고점에 들어가도 결국 버티면 큰 수익으로 돌아왔다. 혹시 지금 투자를 망설였다가 앞으로 찾아올 수도 있는 초 급등 장세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니 당장 들어가서 수익을 내자. 


부동산의 경우 코로나 이후 급등장에서 순매수가 많았던 사람은 무주택자이다. 반대로 순매도 포지션은 다주택자이다. 다주택자는 고점에서 물량을 넘겼고 무주택자는 그들의 물량을 고스란히, 고점에서 매수했다. 이들이 실거주가 아닌 전세를 낀 갭투자에 나섰을 경우 전세가 폭락 이후 계약 갱신 시점에서는 추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그마저도 다시 시장에 던지게 된다. 이때가 시장의 바닥이 된다.


주식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학개미가 외국인을 이겼다며 10만 전자를 바라보던 시점에서 순매수는 개미, 순매도는 외국인과 기관이었다. 개미는 고점에 주식을 샀다. 외국인과 기관은 고점에 주식을 팔았다. 개미들의 계좌 잔고가 박살 나고 실물 경기가 바닥을 친다. 실업률마저 올라가게 되면 직장을 잃은 개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반토막이든 반의 반토막이든 주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이때가 시장의 바닥이 된다. 


욕심으로 눈이 먼 투자의 결과는 위와 같다. 욕심으로 눈이 돌아갈 정도로 매력적으로 보인 시장은 꼭지 근처였다. 모두가 시장의 상승을 이야기하고,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어떤 주식을 사도 수익이 날 것만 같을 때. 저렇게 공부 안 하고 체계도 없는 사람이 수익을 내는 게 맞나? 나는 왜?라는 생각이 들 때. 그때는 살 때가 아니다. 팔아야 할 때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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