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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Aug 16. 2021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의 진짜 의미


아마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 세 살이신 분은 없을 것이다. 여든 살이신 분은 있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독자는 세 살과 여든 살 사이 어딘가를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자.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80? 너무 적다. 그럼 90? 애매한데.. 100살까지는 살지 않을까? 내 친구 중 한 명은 무려 150살까지 살 거라고 답했다. 아주 천진난만하게. 150살 먹은 네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걱정 말라고 한다. 자기가 150먹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거란다. 하하. 


21년 한국인 기대수명이 83세다. 0세로 태어난 신생아가 평균 83세까지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70년은 어떨까? 남자 58.7세, 여자 65.8세. 평균 62.3세다. 21년 국민연금 수령 시작 연령이 62세니까 연금도 제대로 못 받고 억울하게 퇴장하게 되는 나이다. 50년 만에 기대수명은 20살 넘게 증가했다. 혹시 70년에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문장이 있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1820년 정약용이 집필한 속담집 '이담속찬'에도 실려있다. '삼세지습지우팔십'이라는 한자어로. 


1970년 평균 수명이 62살 정도니까 1820년 평균 수명은 그보다 더 적었을 것이다. 물론 평균수명은 평균일 뿐이라 생존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수명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그래도 80살은 '정말 많은 나이'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은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백 살 정도의 느낌이려나? 혹은 여든이 넘어서까지 생존하더라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더 이상 총명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나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세 살부터 여든까지는 인간이 스스로의 자각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나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다시 속담으로 돌아가 보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라는 말의 의미는 곧 사람의 기억이 시작되고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인 세 살에 생긴 버릇이 인생의 끝인 여든까지 이어진다는 말이다. 여기서 끝나면 아쉬우니까 조금만 더 오버해보자. 저 당시 평균 수명은 60살이 채 안 된다. 60에 무덤에 누워서 80세가 된 상황을 생각해보면 백골이 진토 되고 남은 건 뼈밖에 없다. 요새는 주로 화장을 한다고? 그래도 결론은 같다. 어쨌든 뼈도 제대로 못 추릴 정도가 돼서도 이놈의 버릇이라는 걸 고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하얀 백지 위에 칠한 먹물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무리 다른 색으로 덧칠하고 먹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도 이미 바탕에 형성된 검은 칠이 어디로 없어지는 일은 없다. 그 백지를 찢어버리던지 새로운 백지를 여러 장 위에 겹쳐서 다시 그림을 그리는 길 뿐이다. 그래도 아예 제거되는 건 아니다. 백지 예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왼 손목부터 가슴으로 이어지는 멋들어진 용 문신을 그린다고 생각해보자. 세월이 흐르면 잉크가 옅어지긴 하겠지만 절대 지워지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 문신을 지우고 싶다. 문신 제거 병원에 가서 제거 시술을 받는다. 문신을 그리는 데는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고 비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지우려면? 4년간 30번의 레이저 시술 그리고 최초 비용의 몇십 배를 상회하는 금액이 든다. 그래도 완전한 제거를 담보할 수 없다. 레이저로 제거가 안된다면 살을 깎아내야 한다. 


한 번 형성된 습관도 이와 같다. 처음 길을 들이기는 쉽다. 한 번 형성된 길은 쓰면 쓸수록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처음에는 길처럼 보이지도 않던 흔적이 점점 길다운 모양을 만들더니 종국에는 협곡으로 진화한다. 이 협곡을 다시 처음으로 돌리기는 정말 어렵다. 불가능한 과정은 아니다. 단지 다시 돌아가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웬만한 의지로는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 습관을 잘 들이려면 처음부터 올바른 길로 가야 한다. 처음부터 올바른 길로 가는 게 참 어렵다. 바른 길이 어떤 길인지도 잘 모르겠고 누가 나서서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무엇보다 바른 길이라던지 습관이라던지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과정은 어찌 되었던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추구한다. 과정을 등한시했기에 더 느려 보이고, 지루해 보이는 길보다는 빨라 보이고 재밌어 보이는 길을 택한다. 정도보다는 꼼수를 찾게 된다. 정석보다는 지름길을 원한다. 


빨라 보이고 재밌어 보이고 꼼수를 써서 갈 수 있는 지름길. 이런 길이 진짜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 그런 길이 있다. 그런데, 그 길은 누군가가 알려줘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 길을 찾아 헤맨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천재도 기초 없이 천재가 된 사람은 없다.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이론과 기술을 터득해서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한 후, 간신히 세상 밖으로 손을 뻗어 점 하나를 찍어내는 진보를 이룬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물론 점 하나를 찍는 천재도 있고 점, 선, 면, 다차원 우주를 그리는 천재도 있다. 


물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천재의 길은 아니다. 사실 내 한 몸 추스르기에도 벅차다. 그냥 내 인생부터 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느낄수록 정도를 걸어야 한다. 어려워 보이고 지루해 보이는 길을 선택해서 묵묵히 걷다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왜냐고? 그 길이 오히려 더 쉽고 더 빠른 길이라는 점을 곧 깨닫게 될 거니까. 


나는 돈을 빨리 그리고 많이 벌고 싶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맞다. 그래서 가장 빨라보이는길, 차트로 주식에 입문했다. 나는 빨리 돈을 벌 거니까 재무제표도 상관없고 재료도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다 지나갔거나 앞으로 갖다 붙일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실시간으로 그려지는 차트라고 생각했다. 차트야말로 모든 것에 선행하고 움직임 그 자체가 등락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사실 누군가가 그렇게 이야기했고 나는 그 생각을 따랐다. 내 생각 조차도 사실 내가 한 생각이 아니었다. 매수의 맥점을 찾아 강의를 듣고 차트를 돌려봤다. 매수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맥점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빠르게 손절 후 다른 종목을 찾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손절액은 점점 커졌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남은 건 텅 빈 계좌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차트 지식. 그리고 그동안 소비한 시간과 돈을 보상받아야겠다는 '욕심' 뿐이었다. 


이 욕심은 더 큰 화를 불러오게 되는데, 그 점은 앞 시리즈에서 풀어낸 바 있다. 어쨌든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난 후 처음으로 돌아가고 나서부터 비로소 계좌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간단하다. 답은 가까이 있었다.


1. 쌀 때 사서 비쌀 때 판다

2. 분할매수 분할매도


끝이다. 이게 끝. 정말로 끝. 5일선의 비밀이며 세력선의 20일선 데드크로스니 골든크로스니 다이버전스 역다이버전스 상대강도에 매물대에 세력의 매집봉이니 개미털기니 하락매집이니 상승매집이니 세력이 있니 없니 이런 건 나한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 하나하나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부여되고 힘이 생긴다. 그저 요행만을 바라던 나에게는 누군가가 발견한 알토란 같은 정보들이 단지 눈앞을 흐리는 먹구름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더 알기 쉽게 표현하면 모든 것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였다. 


한 번 만들어진 습관을 던져버리기까지 많은 시간과 돈이 소모되었다. 사실 시간과 돈보다도 더 소모된 건 정신력이었다. 매일 밤 잠을 설쳤다. 하루에도 다섯 번은 잠에서 깨 시계를 봤다. 어디 하소연하지도 못한 채 마음 졸이고 전전긍긍하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마치 심장을 쥐어짜는듯한 답답함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 나날들.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에 출근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머릿속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시트콤을 봐도 재미가 없고 책 한 줄 읽기도 힘들었다. 온 정신이 나가서 좀비처럼 살아가던 그때. 기다리는 건 오직 월급날뿐. 코로나19라는 극약처방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살다가 정신력이 고갈되고 결국 한강의 쓰레기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잘못된 습관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결국 잘못된 습관을 일정 부분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부터 비로소 인생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좋은 습관을 계속 쌓아 올려서 이전에 만든 잘못된 습관을 덮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한 번 만들었던 버릇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결국엔 흔적 기관 비슷한 정도까지는 퇴화되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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