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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Aug 28. 2021

앗, 왜 책을 읽다 마십니까?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순간이 도래한다. 뭐랄까, 갑자기 책 내용이 뇌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이해도가 높아지는 경험이랄까. 같은 내용을 봐도 소화력이 좋아진다는 표현이 좋겠다. 예전에는 100페이지를 읽었을 때 남는 게 1페이지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2,3페이지는 남는다고나 할까? 전과 비교해서 무려 두 세 배는 챙겨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그런데 이런 순간은 그냥 찾아온다. 예고도 없고 머릿속에 팡파레가 울리지도 않는다. 그냥 왠지 모르게 책을 읽으면 집중이 잘 되고 머리에 오래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럼 또 신나는 기분이 들어서 책을 더 읽고 싶어 진다. 읽을 때마다 머릿속 책장에 책 내용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상상을 한다. 처음에는 차곡차곡 정리될 것 같던 책이지만 이내 내용들 각자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퍼즐 조각이 되어 무의식 저편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쌓인 퍼즐 조각들이 모이고 모이고 쌓이고 쌓이고 얽히고 얽혀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어떤 시기에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는 모른다.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말,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모두 그런 퍼즐 조각의 얽힘을 엿볼 수 있는 단서다. 이 글 역시 그런 시너지의 결과 중 하나다.


이런 상승효과를 경험하기까지는 일정 양의 퍼즐 조각이 필요하다. 10개짜리 조각으로 맞출 수 있는 퍼즐 그림은 너무나도 한정적이다. 기껏해야 수십 개의 조합에서 끝나고 만다. 그러나 20개를 모으고 30개를 모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사각형 모양을 만드려고 해도 열 개짜리로는 3X3 크기가 한계인 반면 30개를 모으면 5X5 크기의 정사각형을 만들 수 있다. 


퍼즐을 모으면 모을수록 조합의 가짓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된다. 기하급수란 수열이 곱하기로 늘어난다는 의미다. 조각이 추가되면 추가될수록 내가 낼 수 있는 아웃풋은 몇 배로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처음엔 가진 조각이 너무 없어서 몇 개 더 모으더라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렇듯한 작품으로 보이는 퍼즐 조각의 기준이 1000피스라고 하자. 그럼 1000피스를 모으면 나도 그럴듯하게 보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모으는 조각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게다가 조각은 무의식 저편으로 날아가 버려 사실상 내가 어떤 조각을 갖고 있는지 인식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1000개짜리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각은 딱 1000개가 아니라 2000개일지도 모르고 20000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꽤나 했는데 의식의 수준에 변화가 없어. 책을 읽어도 읽어도 그냥 내 삶은 똑같아.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모은 조각의 수는 많지만 시너지를 제대로 발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서 내가 가진 조각이 자동차 만들기에는 뛰어나지만 고양이 만들기에는 조금 곤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고양이를 만들어야겠어 라고 생각한다면 고양이를 만들기 위한 조각 수집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물론 어떤 조각이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비슷한 무언가는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내 생각과는 달리 절대적인 퍼즐 조각의 개수가 모자를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은 이 케이스에 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본인 생각보다 욕심이 많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구를 읽고 반사적으로 나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아닌 게 아니고 바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사람이 얼마나 욕심이 많고 얼마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선생님께서는 읽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꼭 찾아 읽어 주신다면 본인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쨌든 어떤 조각이든 이것저것 모아가다 보면 뭐라도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요새는 자산 상승 곡선의 가팔라짐을 목도한 사람들이 티끌모아 티끌이라는 자조 섞인 문장으로 바꿔 부르기도 하다마는 퍼즐 조각을 모으는 데 있어서 만큼은 티끌 모아서 태산이라는 말이 절대적이다. 퍼즐 조각은 작은 조각으로 존재할 때 그 응용력이 커지는 것이지 거대한 통짜 조각은 어디 써먹기가 애매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기존 조각들과 융화되기 어렵다. 처음부터 거대한 태산을 얻고 시작하면 모르겠지만 애매하게 큰 조각을 초반에 줍게 된다면 그 조각의 비중이 너무 커져버리고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져 버린다. 그 조각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그림을 그려 나가다가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성공처럼 보이는 행운이 닥쳐오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내가 모으는 티끌. 내가 모으는 작은 조각조각의 합은 1.01 + 1.01 + 1.01 이 아니라 1.01 * 1.01 * 1.01 이 되고 하나하나 모아나가면 모아나갈수록 결과값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그렇지만 티끌은 티끌만 하고 티끌이 그야말로 '티'가 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양을 모아야 함을 알고 있어야 한다. 생각보다 모아야 되는 양은 많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빨리 모인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궤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달리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도 얼마나 모아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지 모르고 얼마만큼의 조각을 모아야 되는지도 모른다. 다만 옛날 당나라 두보의 시구에서 그 양을 유추할 수 있다.  


부귀필종근고득 남아수독오거서

대충 해석하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 는 뜻이다. 한 수레에 실리는 책이 몇 권일 까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대략 2000권으로 잡아보자. 다섯 수레라면 10000권의 책이다. 당대에 출판된 책의 가짓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꽤나 엄청난 양이다. 사실 어떤 책이든 10000권쯤 읽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만 권은커녕 천 권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고 보통 어떤 분야에서 백 권쯤 읽으면 어디 가서 아는 척 깨나 할 수 있다. 그 분야에 있어서는 웬만한 사람과는 비교우위에 설 수 있다. 책 한 권에서 세 쪽만 짜깁기해서 엮어도 30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이 뚝딱이라고 생각해보면 꽤나 엄청난 지식의 집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대략적인 목표가 생겼다. 만 권의 책을 읽으면 뭐라도 되는 것이다. 만약 만 권을 읽었는데도 내적 성장도 없고 내 삶도 이전과 그대로라면 두보를 욕하자.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문장을 천 년 넘도록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 세상 전체를 욕하자. 당신에게는 잘못이 없다. 절대적으로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두보를 욕하게 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만 권을 읽고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계속 전진해 나가자.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모으는 티끌은 벌써부터 태산의 일각이 되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다만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결과만 좀 좋았으면 해요. 과정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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