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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Sep 17. 2021

우리가 습관을 유지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습관 만들기는 쉽다. 만드는 것 그 자체에만 한정한다면 말이다. 한 삼일 정도는 할 만하다. 그리고 그다음은?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온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작심삼일이다.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작심삼일이 작심삼일로 끝난다면, 그 작심삼일을 반복해라.


그게 될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작심삼일로 끝나지도 않았다. 뭘 하든 길어야 삼일로 끝나버리는 우리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게다가 어떤 습관을 만들어보려고 마음먹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과 노력과 기타 리소스의 양이 엄청나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야지라던가 명상을 해볼까라던가 책을 좀 읽어볼까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진짜 각 잡고. 아 이번에야말로 인생을 바꿔봐야겠어. 하는 정도의 결심을 이야기하는 거다. 그래. 새해 다짐 같은 거. 


새 해는 일 년에 한 번만 온다. 신정 구정 두 번인데요? 이야기한다면 그래. 두 번이라고 치자. 큰맘 먹고 일 년에 두 번 하는 결심조차 3일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시간의 힘을 모아 모아 구현한 결심이 곧 깨져버리는 광경을 계속 반복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이런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당연하게도 실패를 회피하고자 하는 어떤 기재가 발동한다. 맑은 정신으로 생각해보자. 실패의 반복으로부터 핵심 원인을 찾고 성공으로 가는 길을 고민해야겠지만 우리의 머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정신이 맑을 때가 별로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도 자체를 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원을 삭제하는 쪽이 더 쉬운 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택한다. 결국 작심삼일의 반복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최악이다. 


대체 왜 작심삼일을 반복하게 되는 걸까? 내 의지력이란 녀석이 안타깝게도 만 18개월 영아시절 이후 성장을 멈춘 바람에 나름 성인 노릇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 맞는 말이긴 하지만 더 치명적인 요인이 숨어있다. 완벽주의. 완벽주의가 원흉이다.


우리는 너무 완벽에 목숨을 건다. 완벽을 향한 추구는 좋다. 아름답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목숨까지 건다는 것이다. 애초에 완벽이란 불완전한 개념이다. 어떤 순간의 완벽은 존재할 수 있지만 동적인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뭐가 되었든 오래가지 않아 완벽처럼 보였던 허상은 깨진다. 허상이 깨지면 거기에 목숨을 건 나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죽음에 준하는 내상을 입는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실패의 주문을 되뇐다. 


역시 나는 안 돼. 이럴 줄 알았어. 해도 안 돼. 


놀랍게도 본인의 모든 걸 불사른 후 내뱉는 대사가 아니다. 그저 '며칠' 시도해보고 잘 안된다고 징징대는 18개월 영아의 목소리다. 당신이 아가라면 징징대도 좋다. 아니, 징징대야 한다. 아직은 세상의 도움이 필요하고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시기다. 습관이니 완벽함이니 집어치우고 울어야 될 때는 마음껏 울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가가 아니다. 성인이다. 성인이라고 감정을 감추고 언제나 완벽해야 되나? 물론 아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징징댈 타이밍이 전혀 아니다. 


어떤 습관이 자리잡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2주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3달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환경마다 습관의 종류와 강도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리잡기까지 걸리는 시간 자체가 아니다. 2주든 3달이든 계속해서 시도한다는 것 자체에 있다. 아침 6시 기상이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가정하자. 술 먹고 다음날 늦게 일어날 수 있다. 인터넷 쇼핑에 심취한 나머지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모레부터, 다음 주에는, 다음 달 에는, 일찍 일어나면 된다. 도저히 6시 기상은 힘들다 싶으면 몇 달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도 된다. 3주간 늦게 일어나다가 단 하루 일찍 일어나도 성공이다. 반대로 단 하루 일찍 일어나고 다시 3주간 평소처럼 늦잠을 자도 성공이다. 그렇게라도 내가 세운 목표를 간직하고, 드물게나마 실천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가뭄에 콩나듯이라도 목표 달성일이 늘어나다 보면 언젠간 지금의 현실을 대체하게 되는 날이 온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마음먹었으니 내일은 반드시 습관으로 체화되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야. 너무나도 큰 비약이다. 정말 이루고 싶은 목표라면, 습관이라면 며칠 해보고 내다 버릴게 아니라 가슴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계속해서 시도해야 한다. 달성하지 못한 날은 그냥 두고 달성한 날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생각해보라. 3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30년 동안 축적해온 내가 존재한다. 우리가 세우는 목표는 그 30년간의 축적에 반하는 변화다. 30년이라는 세월을 겪으며 단단해진 무언가를 바꾸는 것이다. 그게 쉽게 이루어질까. 10년이면 변한다는 강산이 세 번을 변해온 시간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30년간 쌓인 걸 바꾸는데 30년 걸리는 건 당연하다. 30년의 세월을 3년 만에 바꾸는 작업을 '혁신'이라고 칭송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삼일로 지난 삼십 년을 좌지우지하기 원한다.


어떻게 보면 작심삼일로 귀결되는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사실 흔히 실패라고 표현하지만, 이 실패라 함은 다름 아니고 그냥 우리가 여태 살아온 방식이다. 우리의 지난 삶 자체를 부정하는 표현이 '실패'인 것인데, 이 표현부터가 잘못이다. 지금까지 실패한 삶을 살아왔다고 스스로가 자책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필요 없다. 열심히 잘 살아왔다. 설령 지금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고 과정 역시 무언가 꺼림칙하다고 할지라도 실패는 아니다. 실패와 성공은 지금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 끝나고 나서,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적인 레벨에서 끝까지 가서야 판단할 수 있는 결과론적인 개념이다.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 백 년 혹은 몇 천년이 지나서 평가가 달라진 문명들, 나라들, 정치가들, 예술가들, 독립운동가들, 과학자들, 그리고 무명의 사람들을 보라. 


그러니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먹을 필요가 있다. 새로운 습관 만들기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실천하는 날이 특별한 날이고 아닌 날은 평소의 나날인 것이다. 그 정도의 가벼움으로 다가가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게 아니고 무슨 군대에서 마냥 겉으로만 각 잡고 악쓰면서 전투적으로 접근하면 백이면 백 실패한다. 여기서의 실패는 자책과 자기혐오로 이어져 결국 본인의 성장 동력을 깎아먹는 진짜 실패다. 


그렇게 완벽주의를 버리고, 성공 그 자체에 집중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그저 시도해보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 하루하루가 힘들면 한 주에 한 번도 좋고 한 달에 한 번도 좋다. 


나는 십 년 넘도록 시도하고 있는 습관이 한 가지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인데 처음에는 시간을 딱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무조건 일어나야지 생각했다. 시간에 맞춰 일어난 날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는 날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심했다. 나는 그저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났을 뿐인데 눈 뜨자마자 벌써 기분이 나빠져 있고 멘탈은 흔들리며 일찍 일어나지 못한 나를 자책하는 어이없는 날이 반복되었다. 당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도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기억에서 잊혀질 때쯤 다시 시작하고 이내 그만두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그렇게 살다가 도저히 아침시간이 아니고서는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주일에 1분씩 일찍 기상하는 방법으로 기상시간을 한 시간 당겼다. 1시간 일찍 일어나는데 1년이 걸렸다. 그 이후로는 아침에 벌떡벌떡 일어났을까? 아니다. 물론 그 전 보다 나아진 건 확실하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사실 오늘도 늦게 일어났고 어제도 늦게 일어났다. 벌써 12시가 넘어가는 걸 보니 내일도 아마 늦게 일어날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이번 주에는 일찍 일어나는 날이 없었지만 저번 주에는 간혹 있었고, 저저번 주는 5일 연속 일찍 일어났다. 내일 또 시도하면 된다. 내일 늦게 일어나면 다음 주부터 일찍 일어나면 된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 날에 포커스를 맞추면 그날은 특별한 날이 된다. 눈 뜨면서부터 뿌듯하다. 소중한 아침 시간을 확보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 기분으로 하루를 알차게 채워나간다.


축구의 신 메시도 매 경기 골을 뽑아내지 못한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의 타자들도 타석에 열 번 들어가서 예닐곱 번은 소득 없이 내려온다. 실책 없는 투수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류 역사 최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알파고도 사람에게 패배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다. 혹은 18개월 유아 수준의 의지력을 보유한, 평균에서 조금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를 너무 다그치지 말고 기회를 주자. 몇십 년 지속된 습관의 고리를 끊고 잠시나마 이뤄낸 성취를 칭찬해주자. 습관은 의지로 만드는 게 아님을 곧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불가능한 목표인 완벽주의를 내다버리고 우리 스스로를 따뜻한 마음으로 북돋아줄 때 비로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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