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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Sep 14. 2021

누가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거야?


우울한 감정은 갑자기 찾아온다. 정말이지 예고도 없이 그냥 찾아온다. 이유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냥 찾아온다.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다. 한 번 우울한 감정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분명히 내 삶은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 있었다. 크고 작은 고민이 있고 트러블이 있지만 그게 나를 이렇게까지 우울하게 만들 일은 아니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당혹스럽다. 그러면서 짜증이 난다. 왜 나는 뭐 좀 하려고 하면 금방 우울해질까. 역시 난 안 돼. 내가 그렇지 뭐. 


우울에 빠진 내 모습을 들여다보자. 우울하기 때문에 짜증을 낸다. 우울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한 통씩 먹는다. 우울하기 때문에 일을 대충 하고 집에 온다. 우울하기 때문에 운동을 쉰다. 우울하기 때문에 공부도 건너뛴다. 우울하기 때문에 잠을 잔다. 우울하기 때문에 게임을 한다. 우울하기 때문에 꿈을 포기한다. 우울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해보자.


짜증내기 -> 감정 표현하기

아이스크림 마음껏 먹기 ->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일을 대충 하고 집에 오기 -> 일의 압박에서 탈출하기

운동 쉬기 -> 힘든 육체활동에서의 해방

공부 건너뛰기 -> 두뇌활동에서의 해방

잠 자기 -> 수면이 부족했음

게임하기 -> 뇌를 좀 쉬고 싶다

꿈을 포기하기 -> 사실 이 꿈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꿈이다


우울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여태 너무나도 오버해서 달려온 내가 나에게 주는 경고가 우울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나라는 녀석이 너무 말 잘 듣고 착한 녀석이라서 우울하게 만들지 않고서야 말을 들어먹지 않는 것이다. '조금 쉬어도 돼.' '천천히 해도 돼.'라고 말해도 '안 돼. 여기서 멈출 순 없어' 하며 달려 나가는 나란 녀석이 문제인 것이다. 


사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능력 이상으로 스스로를 혹사시킨다. 나태해지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필요한 법이지만, 잠깐 멈춰 서서 숨 돌리고 물 한 잔 마실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능력치가 어떤 수치로 나타나지 않기에 나도 모르게 나를 혹사시킨다. 평소 상황에서는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정신력이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마나다. 마나가 떨어지면 마나를 채우기 위해 물약을 마시거나 저절로 마나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마나가 바닥나면 우울해진다. 마나 없이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멋지고 강력한 스킬을 연마해왔고, 구사해왔던 내가 마나가 없어지니 그저 아무것도 아닌 행인 1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킬을 쓸 수 없는 나는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진다. 내가 해 왔던 것들, 이루었던 것들,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울감을 느낀다.  


사실 마나는, 에너지는, 정신력은 기다리면 다시 차 오른다. 기다리는 것 외에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우리가 무언가 활동을 하게 되면 마나는 소모된다. 마나가 전부 소모되면 스킬을 쓸 수 없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게임 한 판 하기도 버거운 느낌. 그런 것이다. 그저 그런 것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저녁이 되면 해가 지고 아침이 되면 해가 뜨는 것처럼 자명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울해진다.


왠지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럴 때는 그냥 마나가 떨어졌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고생한 나 수고 많았구나 스스로를 토닥여줄 타이밍이다. 그저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내 상태를 알아주는 것. 내가 내 노고를 인정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울감의 상당 부분은 사라진다


내가 나를 알아주지 못하기에 나는 우울해지기를 선택한다. 나는 우울한 나를 안아주기는 커녕 왜 이것밖에 안 되냐고 나무란다. 나와 나의 관계는 틀어진다. 나는 겨우겨우 회복한다. 회복됐다고 느끼면 다시 달린다. 곧 우울해진다. 


이 우울의 사이클이 반복되면 나와 나의 관계는 틀어진다. 어차피 우울해질 건데 달리지 않는다. 어차피 우울해질 건데 굳이 우울에서 회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 기본 상태가 우울함이 되어버린다. 우울한 내가 바라는 건 그냥 우울한 나를 바라봐주는 것. 그것뿐인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나를 바라봐주는, 그것만으로 충분한데. 어리석은 나는 나를 봐주지 않고 지나친다.


이제 우울하다고 느껴지면, 거울 앞으로 가자. 가서 내가 우울해지기로 '선택'한 이유를 들어보자. 나는 나에게 항상 열려있다. 나만 준비되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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