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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Sep 11. 2021

회사, 왜 다니십니까?

1. 


회사에 다니는 기간은 자기 관리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진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매일 저녁 퇴근하는 삶. 가끔은 다음날 퇴근하기도 하고 한 달에 두 번은 일요일에도 출근한다. 개인으로서의 나와 회사원으로서의 나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나로 존재하는 그 시간조차 회사에서 소모한 정신력을 보충하는데 소모하는 삶. 회사에서의 역할을 수행해내기 위해 삶의 다른 부분을 끼워 맞추는 삶. 그 대가로 받아온 돈으로 먹고 자고 씻고 입는다. 삶의 수레바퀴를 굴린다. 그 바퀴의 중심에는 회사가 있다. 


삶의 목적은 바퀴를 계속 굴려나가는 것. 바퀴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주인인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나랑 비슷하게 살고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고 알고 싶다고 해도 알아지는 게 아니기에 눈을 감는다. 뭐가 어찌 되었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은 느껴지니까. 느껴진다고들 하니까. 


2. 


그렇게 하루하루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살아내다 보니 어쩐지 적응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아침에 눈 뜨고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도 이제는 잘 나지 않는다. 당연한 듯 샤워하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주워 입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방 문을 나선다. 쉬는 날 난데없이 들려오는 핸드폰 진동소리가 죽도록 싫었지만 이제는 그냥 짜증 정도의 수준으로 내려왔다. 주말 출근도 조금 툴툴거리긴 해도 그냥 한다. 뭐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이제는 안다. 저 소시오패스 같은 차장도, 임원 눈치만 오지게 보는 팀장도, 주말도 휴가도 전혀 없이 365일 회사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상무도 원래 저런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버텨나간 하루하루가 모여 일 년이 되고 일 년이 십 년이 되고 십 년이 이십 년이 되고 삼십 년이 되면서 저런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로서의 나와 회사원으로서의 나의 비중이 무너지고 나로서의 나는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3.


진짜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못할 정도로 오염되어 버리면,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진짜 나는 퇴화되어버렸다. 온전히 진짜 나를 건져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진짜 나 역시 지금의 나에 녹아있다. 가끔 친구를 만난다거나, 가슴을 울리는 영화를 보게 된다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거나 할 때 불쑥 나타나는 진짜 내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떤 흔적 기관처럼 남아있을 뿐. 그뿐이다. 


그래서 더 이상 내 모습을 잃어버리기 전에, 더 이상 침식되기 전에 정신 차려야 된다. 여기 남아있다 보면 저 끔찍한 인간군상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변화를 느낄 수 없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나이는 나이대로 먹었고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이 생겨버렸고 대출받아 장만한 집이며 자동차 할부며 애들 학원비며 벌려놓은 건 많고 목숨 걸고 회사에 충성하며 갈고닦은 능력은 사실 회사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전혀 쓸모없는 것들일 뿐이고. 


어쩔 수 있나 계속 다녀야지.


4. 


적응 기간이니까 힘든 건 당연한 거야. 인정받으려면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진급하려면 힘든 게 당연한 거야. 먹고살려면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삶은 힘든 게 당연한 거야. 그냥 힘든 건 당연한 거야. 


그러면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 동료들과 모여 술 한잔 하면서 인생을 한탄한다. 힘든 이야기를 죽 늘어놓고서는 이제 정치인을 욕하기 시작한다. 내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루저들의 모임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가 내 삶을 어떻게 해주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 회사 생활을 통해 완전히 정신이 노예화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내 삶을 살아가는 건 나 자신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세당한다


회사 생활이 죽도록 힘들어도 때려치우고 스스로 내 삶을 살아낼 생각은 못한다. 결국 한다는 생각이 돈 더 많이 주는 동종기업을 찾고 일은 편하고 돈도 적당히 준다는 공기업을 찾는다. 똑같다. 여기서 힘든 게 저기라고 쉬울까?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는 하지만 굳이 그걸 찍먹 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수 있는가? 


5.


사실은 안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이런 회사생활 따위 나랑 1도 맞지 않는다는 거. 다 안다. 가끔 찾아오는 재미와 정말 더 가끔 찾아오는 뿌듯한 순간들. 그리고 비슷한 삶의 모습을 답습하는 친구들과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틀리지 않았어 라고 자위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걸. 그러면서도 찬란하게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성장에 대한 욕구 그리고 나도 나 자신의 날개를 펼치고 싶다는 원초적인 무의식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한 가닥 빛줄기를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서로의 눈을 꿰매고 귀를 막으며 이 악물고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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