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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Nov 18. 2021

'수업료'의 의미

주식 투자하며 '수업료 낸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통 어떤 종목을 손절하고 나서 내뱉는 말이다. 그런데 이 수업료라는 게 대체 뭘까. 수업을 듣지도 않고 내는 수업료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이상하다.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고 거기서 뭔가 배운 것도 아니다. 손절 금액만큼의 뭔가를 얻은 느낌이 드는 경우도 없다. 그저 가슴만 쓰릴뿐. 거기서 얻는 게 뭐가 얼마나 있을까. 현실세계에서 수업료를 낼 때는 거기에 합당한 가치를 얻는다. 10만 원짜리 과외와 100만 원짜리 과외는 대학생 알바와 전문 강사만큼의 차이가 있다. 1000만 원까지 올라가면? 교수라 불리우는 업계 최 상위권 강사의 노하우와 밀착 코칭 서비스가 따라온다. 


그런데 주식투자에서 10만 원 손절과 1000만 원 손절에서 얻어가는 게 얼마나 차이가 날까? 모든 배움이 그렇겠지만 투자 세계에서도 배우는 사람의 자세와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어떤 유무형의 지식을 대가로 지불하는 '수업료'가 아닌 '손절 금액'을 '수업료'라고 표현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10만 원을 잃고서 실패에 대해 철저히 피드백해서 교훈을 얻어가는 사람과 1000만 원을 잃고 수업료 낸 샘 치자. 하고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잃어버린 10만 원이 수업료로써 기능을 했고 후자는 그렇지 못했다.  


그저 본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자위 수단으로써 잃어버린 돈을 수업료라고 애써 포장했을 뿐이다.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투자 실패로 인한 수업료는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수업료 수업료 하지만 사실 돈을 잃고 나서 하는 자기 위로성 발언에 불과하다. 딱 거기까지다. 수업료는 유튜브 프리미엄 결재 혹은 도서 구입 비용, 그리고 주식 매매를 하기 위한 컴퓨터 혹은 노트북. 매매의 편의를 위한 모니터, 마우스나 키보드. 더 나아가 두뇌 회전을 핑계로 집어온 딸기맛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이런 곳에 지불하는 것이지 시장에서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수업료 지불은 수업료가 아니다. 피 같은 돈을 잃었을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큰돈을 아주 멍청한 과정을 통해 잃었을 뿐이다. 수업료랍시고 뭉텅이로 돈을 잃고 잃은 만큼 얻어가는 게 있겠지 하는 것. 그런 자세라면 잃어버린 돈은 수업료가 아니라 그저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고 어리석은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수업료라는 말을 즐겨 사용할까?


1. 내 어리석음으로 인해 돈을 잃었다는 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리

2.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보상 의식

3. 수업료는 많이 낼 수록 아웃풋이 크다는 일반론에서 오는 기대

4. 다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잃으면 많이 잃은 만큼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가슴이 쓰라리면 쓰라릴수록 더 큰 보상이 주어질 거라고 기대했다. 낸 만큼 돌려받는 날이 온다고 믿었다. 결정적으로 이런 사고방식에 있어 전혀 의심이 없었다. 다들 그런 말을 하니까. 


잃은 돈이 많으면 회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1억을 메꾸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까 10억을 메꾸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까? 냉철한 머리로 생각할 필요까지도 없다. 대화가 가능한 어떤 연령대의 사람 혹은 동물에게 물어봐도 답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실회피를 위한 기제가 발동하면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려버린다. 


물론 엄청난 금액을 손해보고 다시 복구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럼 그분께 물어보자. 손실을 그 정도 냈기 때문에 지금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혹시 당시 손해 본 금액의 10% 정도만 손해 봤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까요? 어떤 실패를 하지 않았다면 거기서 얻은 어떤 노하우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 실패를 그 정도의 크기로 했어야만 했을까에 대한 답은 십중팔구 '아니오'이다. 시장에서 얻는 경험과 교훈은 반드시 실패에서 오는 것은 아니며 또한 반드시 큰 금액을 잃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격표가 달린 상품이 아니라 이 말이다. 굳이 큰 돈을 잃지 않고도 얻어야 할 것들을 얻어갈 수 있다. 


그러니 감당할 수 없는 손절 혹은 감당할 수 있더라도 가슴 쓰린 손절을 수업료로 연결 짓지 말자. 수업료가 아니라 내가 어리석어서 발생한 손실이며, 그 손실을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슴이 더 쓰릴 것이다. 쓰린 가슴을 활짝 열고 인정하라. 내 잘못된 선택으로, 내 부끄러운 욕심으로, 내 어리석은 결정으로 이렇게 상처를 입었구나.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아도 성공의 사다리를 전력으로 내달릴 수 있다. 반대로 손절을 수업료라는 달콤한 단어로 치환하는 자위행위를 지속하는 한, 주식 실력은 절대 늘지 않을 것이고 끝끝내 장기적인 수익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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