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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Nov 24. 2021

손절이 힘든 이유

아, 이때 말을 들을걸

손에 쥔 무언가를 놓아버리는건 정말 힘들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렇다.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돌멩이도 누군가에겐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소중한 보물이 된다. 처음엔 그 돌멩이가 가치 없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더라도 손에 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소중하게 느껴진다. 마치 처음부터 내 몸의 일부였던 것처럼, 이 흔해 빠진 돌멩이가 돌멩이가 아니라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인 것처럼.


사람의 본성이 그렇다. 본인이 가진 것에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본인이 속한 회사가 다른 회사보다 복지가 좋고, 본인 팀 구성원의 실력과 고과를 과대평가한다. 본인 어머니가 교육 공무원으로 종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교사의 퇴직연금 수준을 대기업 부장급 연봉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예시는 한도 끝도 없이 들 수 있다. 취업 준비생 시절 현대차는 줘도 안 탄다는 친구가 입사 후 아반떼를 사더니 차의 디자인이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잘 달리는지, 외제차에 비해 갖는 장점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한다. 이런 경향은 본인으로 옮겨가면 더 극대화된다. 객관적으로 본인의 지능이 평균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간보다 외모가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여러 연구 결과가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본인의 지능과 외모가 평균 이상임을 굳게 믿는다. 


이렇게 사람이란 본인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확률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로또를 구입하고, 서울 신축 아파트를 반값에 살 수 있다는 말에 돈을 긁어모아 부동산 개발업자의 계좌로 이체해 버린다. 왠지 내가 사면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고, 내 경우는 다른 사람과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는 보통 근거가 없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무지갯빛 청사진 하나가 근거라면 근거다. 


이런 경향은 주식 투자에 있어서도 발현된다. 우리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돈이 걸린 일이니 만큼 더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인이 가진 것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이 확증편향이 내가 산 주식에도 고스란히 작용한다.


어떤 종목을 내 계좌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때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름이 좋아서,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 잘 오르고 있어서,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재무제표가 좋아서, 곧 해당 종목의 테마가 주목받을 것 같아서, 과거에 특정 정치인의 대장주로 움직인 이력 등등. 어떤 이유든 좋다. 문제는 그 이유가 사라졌을 때 발생한다. 혹은 그 이유 이외 다른 이유가 생겨서 주가에 변동이 생겼을 때 발생한다.


주가의 변동이 위쪽으로 생기면 상관없다. 땡큐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이유로 수급이 들어왔다면 내가 처음 생각한 이유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 아니면 어쨌든 가격이 올랐으니 팔아버려도 좋다. 꽃놀이패다. 문제는, 당연하게도 가격이 떨어졌을 때 일어난다.


어떤 이유로 주식을 샀는데 주가 흐름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변동성은 감수하기로 생각하고 진입했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크다. 왜 그런가 찾아봤더니 처음 들어갈 때 고려했던 근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이번 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다던가,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서 내년까지는 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라던가, 경쟁자가 많아져 매출에 타격이 있을 예정이라던가, 특정 정치인과 동문인 사외이사 임기가 끝났다던가. 어쨌든 처음 샀을 때의 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1. 주가가 오를 다른 이유를 찾는다.

2. 처음 생각한 근거가 없어졌으니 더 이상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손절한다. 


보통 1. 번에 매진한다. 2. 번이 답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애써 무시한다. 시장은 폭락하기 전 여러 번 경고를 준다. 주가가 하락하는 와중에도 기회는 주어진다. 시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네가 생각한 그 이유는 없어. 다음 주엔 지금 떨어진 것보다 훨씬 더 떨어질 거야. 대신 한 번씩 기회를 줄게. 그때 빠져나오면 그렇게 큰 타격은 아닐 거야. 알아서 해." 


그러나 시장의 경고 역시 모른 척한다. 그러면서 다른 이유를 끌고 온다. 최초 생각한 이유에 미치지 못하는 자잘한 이유들을 긁어모은다. 3년 전 주가가 이랬으니 거기까진 오를 거야. 4년 전 지지선에서는 반등할 거야. 정치인과 관계가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옛날의 연관성을 기억해줄 거야. 이번 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다음 분기에는 흑자전환할 거야. 어디까지나 본인의 희망이 투영된, 근거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들을 이유라고 끌고 온다. 이런 이유들이 의미가 있었다면 분명 최초 구입 시에도 고려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지푸라기 같은 근거들은 당연하게도 수급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주가는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지나고 보면 처음 생각한 그 이유가 사라진 시점에 빠져나오기만 했어도 약간의 이득을 볼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다. 최초 경고를 무시했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경고에서만 정신을 차리기만 했어도 큰 타격은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꼭 지나고 나서야 눈에 들어온다. 멘탈에 큰 상처를 입고, 감당하기 버거운 금액을 뭉텅이로 날리고 나서야 선명한 빨간색으로 색칠되어 뇌리에 꽂힌다. 머리로는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누군가의 글을 읽거나, 조언을 듣거나 하면 진부한 잔소리로 치환되어 뇌의 저장소가 아닌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손절의 사이클을 마무리 짓고 정신도, 계좌도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다시 쓰레기통을 뒤적거린다. 


아, 이때 말을 들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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