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그런 성향이 상당 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장애가 되어 앞길을 여러 차례 가로막았다. 그중 한 가지가 주식투자이다.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주식투자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완벽한 매매를 위해 책상 위를 먼지 하나 없이 세팅해야 된다거나, 보유 주식의 비중을 칼같이 일정 퍼센트로 맞춰야 된다거나, 이런저런 복잡한 기준에 완벽히 들어맞는 종목을 골라야 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식이었다면 주식시장에서의 성공을 일찍 손에 쥐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런 식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 발현되었냐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식으로 드러나버렸다.
중학교 무렵부터 집에서는 경제지를 구독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신문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경제지를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기업이 나오는 경제 뉴스였다. 정치면은 아무리 봐도 복잡하고 재미도 없었다. 세계면은 두 번째로 흥미로운 섹션이었다.
신문에는 증권뉴스가 따로 있었다. 이런저런 기업이 소개되기도 하고 다양한 이유로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주식투자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주식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사실 너무나도 막막한 분야였다. 주식투자를 하려면 차트를 아주 화려하게 그릴 줄 알아야 될 것만 같았고 기업 분석도 애널리스트 수준으로 파고들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에는 전문가도 돈을 벌지 못하는 곳이 주식시장이라는 문장도 왜인지 모르게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의 변화를 예측하는 건 모르겠지만 6개월 뒤의 이벤트나 내년에 있을 올림픽에 오를 만한 종목을 미리 사두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한 이벤트가 발생한 시점에 유사한 이유로 주가가 오른 종목이라면 다시 그 이벤트가 돌아왔을 때도 상승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훌륭한 테마주 투자 아이디어였다. 물론 그런 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그 당연한걸 못 해서 빌빌대고 있는 걸 보면 꼭 그렇게 판단하기만은 어려운 게 주식투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 생각을 발전시켜서 공부를 해 나갔다면 지금의 나와 저 시기부터 주식공부를 시작한 나와의 괴리는 꽤나 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저 생각은 그저 뇌 속에서 삭제되어버렸다. 무언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것 자체는 힘들겠지만 시작조차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공부를 시작해버리면, 그 공부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의 보상을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정말 제대로, 각 잡고 시작해야만 한다. 말랑한 마음가짐으로 해 보고 안 되면 말지 뭐.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나에게는 그런 여유,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
시도 자체를 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원을 삭제해 버린다면 이해가 될까? 주식 투자에 있어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법론의 실마리를 찾았음에도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것은 곧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극도로 발달한 자기 방어적인 기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금 와 생각하면 너무나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그랬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주식투자도 미뤘다. 당시에는 돈도 없는 학생 시절이었기에 어차피 돈을 불려도 얼마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워런 버핏이 10살에 주식투자를 시작했음에도 지금 와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10살에 투자를 시작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이야기다.
완벽주의의 틀에 갇혀서 큰 기회비용을 치른 셈이다. 10여 년을 일찍 눈 뜰 수 있는 기회였다면 기회였는데 말이다. 지나간 과거를 책과 문자 혹은 누군가의 증언으로 듣는 것과 내가 직접 체험하는 것은 말 그대로 천지차이가 아닐 수 없다. 돈 주고도 절대 살 수 없는 경험을 날려버린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다.
그러고서 다시 주식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가 일을 시작하고 돈을 어느 정도 모아놨을 무렵이다. 10년도 훨씬 전 고등학교 시절 떠올렸던 아이디어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돈을 뻥튀기하고 싶다는 욕심만 남았다.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투자아닌 투자를 통해 돈을 잃었고, 그 손해의 과정을 엮은 매거진이 '주식에 3천만원 꼬라박고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