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에 있어서 결과 지상주의적인 성격은 큰 장애가 된다.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추구하게 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어렸을 때 부모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어떤 성격의 형성이든 어릴 때의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마련이다.
아이가 성적을 잘 받아오면 부모는 칭찬을 해준다. 정말 잘했다. 우리 진이는 뭘 해도 잘해. 우리 진이는 천재야. 우리 진이는 다음번에도 100점 맞을 거야. 과정에 대한 칭찬보다는 결과에 대한 칭찬이 주를 이룬다. 이런 칭찬이 반복되면 아이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함을 반복 학습한다. 얼마나 고민했고, 노력했고, 시간 투자했고, 반복했고, 집중했고, 웃고 울고 괴롭고 슬펐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걸 학습한다. 오로지 중요한 건 시험 점수로 대변되는 결과일 뿐. 생각의 중심은 그 결과에만 집중되고 결과를 만들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과정은 등한시된다.
탁월한 결과에 대한 평가도 이렇게 훌륭한 퍼포먼스를 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정말 고생 많았구나. 힘든 과정을 잘 버티고 멋지게 마무리했구나.처럼 과정에 대한 칭찬보다는 천재니까. 영재니까. 머리가 좋으니까.로 퉁쳐버린다. 천재고 영재고 머리가 좋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어도 노력 없이는 절대 뛰어난 결과를 낼 수 없다. 노력은 누구나 하는 당연한 상수로 두고 변수를 만드는 것이 천재적인 영감일진대 상수는 상수라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간과하는 것인지, 노력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개념보다는 내 자식은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타고나기를 바라는 믿도 끝도 없는 바람이 투영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노력 따위는 관심이 없고 결과에만 포커싱 하게끔 훈련되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세 가지 모두 포함되겠지.
학창 시절은 시험 점수가 결과로 환산되고, 사회에서는 고과가 결과로 환산된다. 주식투자에 있어서는 얼마나 벌었느냐가 결과로 환산된다. 돈보다 더 직관적인 건 없다. 수능 점수가 몇 점이었든 회사에서 얼마나 승승장구하든 인센티브가 어떻게 연봉이 어떻고 크게 관계없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주식으로 돈만 잘 벌면? 주식투자로 매 달 300만 벌어도 당장 회사 때려치울 사람들이 줄을 섰다. 현실은 300은커녕 죽어라 일하고 받은 월급으로 밑 빠진 독에 미친 듯이 돈을 때려 붓는 안타까운 영혼이 대부분이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결과가 곧 돈인 주식투자에서는 그 결과에 더욱더 집착한다. 과정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초단타든 단타든 기술적 분석에 의지한 차트매매든 재료매매든 테마주 투자든 우량주 장투든 시황 매매든 뭐 어쨌든 상관없이 어떤 방법으로든 수익을 내기만 하면 된다. 진짜 문제는 이다음이다.
돈을 버는 결과에만 목을 걸고 있으니 돈을 벌 수가 없다. 시장에 대한 공부든 기업에 대한 공부든 매매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얼마나 분할해서 언제 어느 시점에 매도하는 게 좋을지,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손실을 끌고 가서 수익으로 마무리할지에 대한 머리 아픈 시나리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눈을 돌려버린다. 그냥 복잡한 생각하고 싶지 않고, 머리 쓰고 싶지 않고, 노력하고 싶지 않고, 그냥 좀 책 몇 권 읽고 유튜브 좀 들락날락한 정도로 돈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학창 시절엔 과정(노력)과 점수(결과)에 대한 스스로의 납득이 있다. 공부 안 하고 점수 안 나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하루 전날 벼락치기하고 점수를 조져도 가슴은 쓰릴지언정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양심이 살아있는 시기다. 왜? 시험 점수는 돈이 아니니까. 점수에 눈이 돌아가는 것 까지는 아닌 것이다. 물론 공부를 많이 했는데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 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학창 시절 시험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와서 울상인 친구들의 절대 점수를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내 생각보다' 월등하게 높은 점수였을 것이다. 결과가 다만 노력에 비해 좋지 않았을 뿐이지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오진 않는다.
이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양심 밸런스가 주식투자로 들어오면 무너진다. 돈(결과)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기 때문에 내 과정이 어찌 되었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교과서와 참고서로 대표되는 정석적인 레일이 없기에 과정에 대한 노력과 현재 위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도 양심 밸런스를 망가뜨리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공부에 있어서는 나 수학 인강 10시간 듣고 문제 20시간 동안 풀었어. 문제집 2권 2바퀴 돌았어로 표현할 수 있는 공부량이지만, 주식투자로 오면 조금 애매해진다. '피터 린치가 쓴 책 다 읽었고 신사임당 유튜브도 10시간이나 봤어. 차트도 매일 100개씩 한 달 돌려봤다.' '그래서 뭐? 차트를 볼게 아니라 그 시간에 사업보고서를 봤어야 되는 게 아닐까?' '한가하게 사업보고서나 볼 때가 아니고 국내외 뉴스 모니터링하면서 다음에 돈 들어올 테마는 뭐가 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맞을 거 같은데?' '그런 세상의 모든 정보와 심리가 종합된 게 바로 차트라니까, 차트만 봐도 다른 거 하나도 볼 필요 없어.' 이런 식으로 돌고 돈다. 주식으로 성공하기 위한 길이 한 둘이 아니기에 나타나는 혼란이다.
방법이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잃고 더욱더 결과에만 집착하게 된다. 어떤 방법에 100시간이고 1000시간이고 쏟아붓고 공부한다고 해서 그 방법으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없다. 그래서 노력의 방향을 잡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사실 방법이 여러 가지 기에 나와 맞는 방법이 하나는 있는 법이다. 딱 한 가지 길만 존재했더라면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은 그냥 주식투자를 접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렇지가 않다. 주식으로 성공한 사람들, 적어도 자기 밥벌이는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방법론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가 서로 다른 스승이 있고 영향받은 책이 있고, 인물이 있지만 그 누구도 누군가와 똑같은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떻게든 자기 나름대로 변형이 되기 마련이다.
고수가 되면 어떤 칼을 쥐어도 훌륭한 퍼포먼스를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수라면 자기 손에 꼭 맞는 전용 무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이 무기가 있었기에 그가 고수가 될 수 있었고 그 무기에 통달하는 경지에 올랐기에 어떤 칼을 가져다줘도 고수다운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뭐가 되었든 노력을 쏟아야 한다. 절대적으로 노력이 필요한 곳이 주식시장이다. 살아남은 놈이 이기는 곳이 주식판이라지만 매일매일 공부하고 시장에 깨지고 반성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수익이라는 달콤한 과실은 처음부터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과일이 열리기까지는 비옥한 옥토가 필요하고, 맛있는 과일나무의 씨앗이 필요하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겪을 수많은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고 여름과 겨울의 반복을 인내하며 버텨야 한다. 그렇게 몇 년이고 지나야 나무는 나무가 되고 비로소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이제 이 나무는 오롯이 나의 나무이기에 꾸준한 관리를 통해 더 큰 나무로, 군집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나무를 심을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과일만 따먹을까 고민하다 보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수많은 땀과 노력, 지루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시간이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