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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Jul 07. 2022

자아가 없었던 남자의 21살 이야기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군대 가기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한 없이 두려웠다. 나는 본래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는 타입도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기보다는 혼자 있는 게 좋았다. 나를 드러내는 것도 어색했고, 어려웠다. 


군대에 가면 나는 사라지고 조직이 남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용납하지 않는 곳이 바로 군대 아니던가. 잠도 같이 자고 밥도 같이 먹는다. 훈련병 시절에는 화장실조차 같이 간다. 훈련도 같이 받고 총도 같이 쏜다. 얼차려마저 같이 받는다. '나'는 사라지고 '조직'만이 남는 곳, 군대. 본질적으로 군대와 나는 맞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스물한 살의 나를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에게 나라는 존재가 있었던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내 인생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있었을까. 없었다. 내 안의 코어는 열등감으로 뭉쳐있었고 그 열등감 뭉치를 자존심이 둘러싸고 있었다. 열등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자존심을 부렸지만, 당연하게도 열등감은 밖으로 흘러나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다. 내 안에 나는 없고 열등감이 자리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막상 시작한 군대 생활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내 생각을 필터링 없이 이야기하는 통에 혼나기도 혼나고 욕도 먹었지만, 어딘가 깊이 없이 시원시원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에 녹아들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나니 군대만큼 편한 곳이 없었다. 누군가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규칙들이 이미 정해져 있고, 전역 날짜도 정해져 있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됐고 나 역시 규칙에 따라 후임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계급별로 정해진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에 대한 인수인계도 철저히 이루어졌다. 이등병 때 해야 될 일(변기 닦기)을 하다가 일병이 되면 일병이 할 일(화장실 바닥 닦기)을 하면 됐고 상병이 되면(세면대 청소), 분대장이 되면(청소 감시), 병장(청소시간 짱박히기)이 되면 또 그에 맞춰서 주어진 일을 하면 그만이었다.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었다. 


일에 대한 책임도 크게 없었고, 일이 어렵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군생활에서 어려울 건 하나도 없었다. 일머리도, 눈치도 적당히 보며 두루뭉술 지낼 수 있었다. 계급이 올라가고 생활이 편해지니 다가오는 전역날이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여기서는 나라는 사람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직급도 올라갔고 지휘관 말석인 분대장이라는 직책도 달아봤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전역을 앞둔 병장 생활. 몸도 마음도 편하고 일도 할만했기에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막상 전역하고 부대 정문을 나서니 시원한 감정과 함께 아득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군인이라는 가면을 빼앗겨버린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마주해야만 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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