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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Sep 20. 2022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이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깨끗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마음은 우리가 참 쉽게 생각하면서도 절대 쉽지 않은 대상이다.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됐으면 좋겠다.

왜 세상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야속하게 느껴졌던 적도 수 천 번 이상 느꼈을 것이고 정말 마음먹고 잘해봐야지. 하는 다짐도 수 만 번 이상 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 천 번 투덜대고 수 만 번 다짐해도 마음이 정말 내 맘대로 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어느 정도는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다가도 어느 순간 분명 내 마음먹은 대로 됐던 내 마음이 절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험을 수 없이 반복하고 있는 우리다. 


그렇다면 마음대로 안 되는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굳이 어떻게 하려고 마음먹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욕심일 뿐이다. 내 마음은 곧 무의식의 발현인데 그 무의식을 의식 레벨에서 컨트롤하려고 하는 내 마음이 바로 욕심이라는 뜻이다. 왜 욕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내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것에 대해 겁을 줄까?


무의식은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두뇌 활동을 말한다. 의식이 범접하지 못하는 수많은 활동이 무의식 중에 이루어진다. 음식을 먹고, 냄새를 맡고, 호흡하고 발성하는 것. 우리 몸의 각종 장기가 제 역할을 하며 움직이는 것, 뇌 안에서 수많은 전기 신호가 번쩍이며 사고하고 판단하고 기억하는 것.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의식이 작용하는 영역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무의식의 작용은 뇌를 비롯한 우리 몸을 움직이는 오퍼레이팅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모든 것에 작용한다. 사고의 체계에서부터 생각하는 방법,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까지도 모두가 무의식 레벨에서 이루어진다. 곧 무의식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더해 DNA에 새겨진 600만 년 동안의 길고 긴 인류의 진화의 과정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렇기에 의식으로 무의식을 컨트롤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의식이 무의식을 가르치려들면 무의식은 화를 낸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왜? 나만 이렇게 한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에서부터 시작된걸 갑자기 바꾸라고? 그렇게는 못 하지.'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를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는 나머지 본인이 한 번 정한 무언가를 절대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정말 사소한 것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다. 휴지를 거는 방향이 안쪽이냐 바깥쪽이냐, 샤워를 하고 나면 환풍기를 켜고 나오냐 끄고 나오냐, 비 오는 날 우산을 집 안에서 말리냐 밖에서 말리냐로도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위에서 열거한, 많아야 십 수년 된 습관뿐만 아니라 시답지 않은 가십거리라도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처음 들었냐에 따라서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으려 한다. 


하물며 습관이나 방금 들은 아무 관계없는 소식에 대해서도 마음을 바꿔먹기 쉽지 않은데, 600만 년 진화의 과정이 축적된 무의식을 바꾸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무의식을 바꾼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님을 알았다면 절반은 왔다. 의식 레벨에서 무의식을 컨트롤하는 것을 욕심이라고 했다. 무의식을 컨트롤하는 게 어렵다면, 무의식을 내 편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 


무의식은 어쩌면 의식 레벨에서 생각하는 나 자신보다도 더 나 자신에 가까운 녀석이다. 왜? 무의식이야 말로 말 그대로 나의 생존 그 자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대한 개입이 어려운 이유도 이 친구가 생명 유지에 대한 막대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굳게 다짐한 A가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아침형 인간이야말로 시간을 알차게 쓰는 훌륭한 인간상이고, 나 역시 잠을 3,4시간만 자고도 훌륭하게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는 초인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12시에 잠자리에 들어 3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계획했다. 무의식이 의식에 휘둘려 하루 3시간 자는 생활을 이어나간다면, A는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수면부족으로 죽고 말 것이다. 실제로 억대의 빚을 지고서 24시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잠은 일 사이사이 쪽잠으로 해결하는 불굴의 의지를 무려 10년간이나 이어온 분이 있다. 그분은 10년에 걸쳐 맘 편히 한 숨 편하게 자지 못하고 삶을 불태웠다. 거액의 빚을 갚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이렇게 의식 레벨에서 무의식을 마음대로 컨트롤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아 저는 그렇게 까지는 아니고 좋은 대학 가게 하루 5시간만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0시간씩 게임 분석해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좋다. 이 정도 수준은 본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달성 가능한 단계다. 물론 좋은 대학 가는 것 혹은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은 별개지만, 그 목표를 향한 5시간의 공부, 10시간의 게임 분석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이란 녀석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 갑자기 내가 가자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잘 달래야 한다. 내 목표를 아침저녁으로 상기시키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작은 목표를 실천한다. 하루 5시간 공부를 위해서 하루 5분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무의식도 오케이 할 것이다. 그 정도는 눈 감아주지. 어디 한 번 해 봐. 그렇게 시간을 늘려 나가다 보면 5분이 10분이 되고, 10분이 1시간이 된다. 1시간이 5시간에 이르기까지는 금방이다. 무의식도 이제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동료가 된다. 그렇게 공부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그다음은 쉽다. 계속 그 습관을 강화해 나가면 된다. 좋은 대학이든 게임 분석이든 아니면 근육 만들기든 매 한 가지다. 계속 스노볼을 굴려 나가기만 한다면 반드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핵심은 간단하다. 무의식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무의식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시작해서 같은 목표를 공유하게 되면 그때가 바로 좋은 습관이 형성된 순간이다. 이 순간은 순간으로 오지는 않는다. 나도 모르게 정신 차려 보면 스며들어 있을 뿐. 무의식을 컨트롤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굳은 마음을 먹고 극기를 각오했을 때는 절대 마음대로 안 됐지만 결국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방법으로 무의식이란 녀석을 내 편으로 만들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변동성과 계좌의 미 실현손익 그리고 매일 불어나는 손실의 규모를 맞닥뜨리거나, 그런 생각만 하더라도 무의식적인 짜증이 북받쳐 오른다. 이 짜증을 어떻게 컨트롤하려고 하다 보면 도리어 내가 그 짜증에 말려들어 버린다. 그렇게 기분은 잡치고, 냉정하지 못한 판단을 해 버린다. 견디다 견디다 못해 손절해 버리면 다시 날아가는 주가. 그리고 날아가버린 주식에 억지로 올가미를 매어보니 그 올가미는 사실 내 목에 걸린 교수형 집행용 올가미임을 자각하게 되는 경험을 투자자라면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의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리고 그 무의식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짜증을 잠재우는 방법도 곧 알 수 있다. 무의식을 끌어들여 투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그 방법이다. 짜증이 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판단에 대한 주도권을 무의식에게 내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의식 레벨에서의 투자 결정력 보다도 현저하게 낮은 수준을 자랑하는 무의식이 판단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그렇게 내린 결정은 십중팔구 손해를 불러온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무의식과 더불어 꾸준한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결론은 항상 그렇듯이 원론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뭐든지 원론이 원론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가장 힘들고, 그것을 실천하기는 더욱더 힘든 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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