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한다는 건 현재에 발을 딛고 돌아보는 것이다. 지금 내게 없는 것, 지금 내게 사라져 버린 것을 잠시 되짚어 보는 것이다. 지난 사랑을 추억한다는 건 지금 그 사랑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원은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비겁하게 침묵하며 돌아섰다. 그가 겨우 한 일이라고는 한밤중 아버지 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먹이고, 멀리 있는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은 무수히 많은 사진들처럼 추억으로 저장되어 끝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훗날 미소를 지으며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뿐 이었다.
긴 터널을 지나고 성숙해진 다림은 사진관 앞에 섰다. 코끝이 약간 시큰해지는 겨울이었다. 긴 코트를 입고 적당히 화장기 있는 얼굴로 사진관 문 옆에 걸려있는 사진 한 장을 본다. 정원이 찍어준 그 사진에는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의 모습이 쑥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한때 참 많이 아팠던 그 사랑을, 미소 지으며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담담히 웃음 짓고, 뒤돌아선다.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라는 것, 그에따라 감정은 계절처럼 녹는다는 것, 지금 느끼지 못하지만 지난 시간은 늘 우리에게 그렇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현재에 서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