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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 Jun 22. 2024

고운 꿈 꾸렴.

“고양이 입양해오자!”


토요일 정오 가까운 시간, 아빠가 말했다. 엄마는 허리가 아파서 한의원에 갔고, 아빠와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었다. 세계 곳곳을 보여주는 방송이었다. 유명 연예인이 멋스럽게 활보하는 호화스러운 관광지 소개가 아니라, 현지 언어를 할 줄 알고 지역을 잘 아는 이가 배낭 하나 메고 돌아다니면서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였다. 이런 방송의 특징 상, 발가벗고 노는 어린이들, 그 옆에서 어울려 컹컹 짖는 큰 개들, 흙담 위에 앉아 카메라를 뚫어지게 보는 개름한 얼굴의 고양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는 한다. 그래서인가, 갑작스러운 아빠의 말이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 부모님은 시골살이 하러 강원도의 한 조용한 마을로 옮겨 가셨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듣기로는 햇빛 잘 들고 공기도 맑으며 계절별 기운 따라 올망졸망 예쁜 꽃들이 그득 피는 곳이다. 사는 집에 테라스 겸 데크가 딸려 있어 고양이를 키우기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아빠의 설명이었다. 넓기도 해서, 혼자보다 둘이 딱이라고도 했다.


"엄마도 고양이들 함께 살고 싶다는데... 서울 나온 김에 데려가면 좋을 것 같다."


엄마도 동의했다면 괜찮은 제안 같았다. 찾아보자고 대답한 후, 아빠 스마트폰으로 반려동물 커뮤니티에 들어가 입양 게시글들을 훑었다. 개 사진이 대부분인 목록 가운데, 한 줄이 눈에 띄었다.


"코숏(회색), 10일 된 고양이"


게시글을 열어보니, 정체를 정확히 모르겠는 회색 털북숭이 사진 한 장과 추가 정보를 보려면 9,800원을 결제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시키는 대로 절차를 밟고 드디어 글을 게시한 사람의 연락처를 확인해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상대방과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는 소리 너머 “으엥 으엥"하는 선명하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통화를 마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상대방은 아빠 번호로 사진 몇 장을 더 보냈다. 웹 사이트에서 본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도만 달라졌을 뿐, 눈코입과 몸은 여전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아빠는 마음에 드는지 가보자고 했다. 나는 그럭저럭했지만, 고양이에 대한 다른 게시글이 없어 아빠를 따라나섰다. 주소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 어느 상가 건물의 지하였다.


이제야 말하지만, 아빠는 물론 나 역시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코숏"은 어떤 단어들의 줄임말인지, "10일 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아는 단어라고는 "고양이" 하나. 길가 돌아다니는 얼룩덜룩 고양이의 여유로움, 매일 우리 집 화단과 텃밭에 와서 배 깔고 누워있는 검은 털에 노란 눈을 가진 고양이의 능청스러움, 간혹 밤에 애처롭게 들리는 고양이 소리, 집사인 주변인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새초롬한 고양이 사진들 정도가 고양이에 대해 내가 가진 인상이었다. 그렇게 "코숏(회색), 10일 된 고양이"에 대한 마땅한 실체도 상상할 줄 모르면서,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의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


시멘트로 지은 건물 지하는 동굴 같았다. 한 밤처럼 어둡고 서늘했다. 겉옷 앞섬을 오므리고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데, 스마트폰 너머 들렸던 쨍한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두어 층쯤 더 아래로 가니, 한 종교기관 간판을 걸어놓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전등불을 모조리 꺼놓아 반대편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 크기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소리의 발신지는 입구 가까이 한쪽 구석에 놓인 2인용 원형 탁자 위였다. 그 앞으로 다가섰다. 사진으로 본 회색 털 뭉치가 사력을 다해 울부짖었고, 아직 다리에 힘을 제대로 줄 수 없어 몸을 질질 끌면서 기어 다녔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내 머릿속 "고양이"는 와장창 깨졌다. 저 멀리 더운 나라에서 신세 좋게 늘어져있는 고양이도 아니었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터줏대감 고양이도 아니었고, 사진들로 본 인형 같은 고양이도 아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건 고양이가 아니었다.


뭔지 알 수가 없어, 내 손바닥만 한 덩어리에 손가락을 가만히 갖다 대었다. 가죽 아래 등뼈가 세밀하게 만져졌다. 너무 작고 약해서 부서질 것 같아 겁이 났다. 약간의 힘도 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얼른 손을 떼야지 싶었는데, 가죽 밑으로 뭔가 울컥하고 파도치듯 지나가더니, 슬슬 따뜻해졌다. 자신이 차지한 작은 면적을 데우면서, 소리를 낼 때마다 그 속에서는 뭔가를 팔딱거렸다. 늦겨울 잔여물로 남은 추위를 견디느라 온갖 동물 털로 구석구석 감싼 인간과 달리, 보란 듯이 나뭇가지를 뚫고 올라온 통통한 새순의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털들은 온기와 움직임을 부드럽게 전해주었다. 이 몸뚱이는 자기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내가 느끼는 이 온기를 동굴 속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순간 정신이 들었다.


"정말 생명이다. 고양이다."


건물 근처 보라매 공원에 보자기로 싸여 버려져 있었단다. 보자기 안에는 셋이 있었는데, 모두 데리고 와 각각 입양보냈고 이제 남은 혼자라고 했다. 이런저런 설명도 전해 들었다. 급히 건물 밖으로 나가 근처 마트 앞에 내놓은 라면 상자를 주워왔다. 자동차에서 담요도 꺼내왔다. 상자 안에 담요를 두 겹으로 깔고 그 위에 아기 고양이를 넣어 내가 들었다. 아빠는 분유 한 통과 젖병, 동물 병원에서 사 왔다는 안약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었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무릎 위에 고양이 상자를 가능한 평평하게 두었다. 4월 중순인데도 이상 고온 때문인지 날씨는 28도에 달할 만큼 뜨거웠고 자동차 안은 온실 같았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에어컨을 틀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겉옷을 벗고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다. 지하에서 나온 아기 고양이에게는 처음 맞는 훈훈한 기운일 수 있다.


아기 고양이는 상자 모서리로 몸을 끌고 가 작게 웅크렸다. 자동차 안 후텁지근한 공기마저 자기가 태어난 예쁜 계절, 비로소 다정한 날씨로 바꿔 놓고는, 그 속에서 아기 고양이는 봄을 맞았다. 조그만 틈만 남기고 상자 입구를 아무려 줬다. 태어나서 처음 살 맞대고 살 가족이 생겨서일까, 음습한 곳을 빠져나와서일까, 자신도 생명임을 누군가 알아봐 줘서일까, 줄곧 쏟아지던 불안하고 세찬 소리가 잦아들었다. 대신 "히잉 히잉", 봄바람에 풀잎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곧 조용해졌다.


상자 입구 틈으로 들여다보니, 아기 고양이는 자동차 유리를 통과한 연노랑의 볕 한줄기를 쬐며 자고 있었다. 작고 소중하다는 감탄은 이런 존재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다.


아가야, 푹 잘 자렴. 앞으로 고운 꿈 꾸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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