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는 나, 아빠와 함께 무사히 집에 왔다. 한의원에 간 엄마도 집에 돌아와 있었다. 상자를 조심히 들고 집에 들어와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엄마는 입구를 살짝 열고 들여다봤다. 이내 엄마의 두 눈에는 물이 고였고, 주변 살은 분홍으로 물들었다.
"너 낳고 병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온 첫날 생각난다."
나는 예정일보다 두 달 빠르게 미숙아로 태어났다. 엄마는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나를 낳았는데, 달수가 부족한 것도 모자라 출산 과정 내내 엄마를 엄청 고생시켰고, 우여곡절 끝에 아주 약하고 아픈 아기로 세상에 나왔다. 나는 곧 숨이 끊어질 듯 새파랗게 질린 몸으로 나왔지만, 그날 그곳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아기였다. 의사는 이런 나를 인큐베이터에 넣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날 하루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태어날지 모르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신생아에게 내줄 공간은 없다고 했다. 엄마와 내 걱정으로 밤새 마음 졸이느라 탈진한 아빠는 새벽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벌린 입이라고 마구 쏟아내는 의사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당장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넣어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렇게 두 사람의 속을 휘저으며 진액을 빨아먹고, 두 사람의 불안과 울분을 등에 엎은 채, 당당히 인큐베이터 속으로 들어갔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너무 힘이 없어서 우유를 빨아먹지 못했고 그래서 자라지도 않았다. 부서질 듯 가늘어서 간호사들은 나를 씻기는 대신 따뜻한 거즈로 그나마 넓은 부분만 조금씩 닦아줬다. 두 눈에는 큰 눈곱이 달렸다. 엄마는 속상해했다. 주변 아기들은 뽀얗게 살이 오르는데, 나는 삐쩍 마른 가죽만 뼈 위에 입고서 꼬질꼬질하게 인큐베이터 속에 누워있었다. 아빠는 그런데도 예쁘다고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엄마에게 오늘은 아기가 조금 자랐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생명의 흐름이다. 나는 용케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을 버텼다. 차츰 혼자 숨을 잘 쉴 수 있게 됐고 혈색도 돌아왔다.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위험한 시기를 넘겼으니 마침내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의 승인을 받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라면 박스에서 새어 나오는 들릴 듯 말듯한 숨소리와 뼈의 형태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얇은 등가죽을 보면서 옛날 감정이 울컥 올라온 듯했다. 잠이 깬 아기 고양이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울기 시작했다.
"으엥 으엥. 으엥 으엥"
아빠가 들고 들어온 비닐봉지에서 분유와 젖병을 꺼냈다.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도 받아왔다. 분유통에 적힌 안내대로 분유를 타서 아기 고양이 입 앞에 가져다 댔다. 분명 배가 고파서 우는 듯한데 물지를 않았다. 젖병을 얼굴에 더 가까이 가지고 가면 악 지르듯이 앙칼지게 울면서 고개를 피했다. 어떻게 먹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몸은 너무 작으니 손으로 잡지도 못하겠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왼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기 고양이 목 뒤를 잡았다. 엄지와 검지로 목 주변을 달래듯이 살살 문지르면서 손바닥으로는 등을 감싸줬다. 그리고 젖병을 입 앞에 뒀다가 울려고 입을 벌렸을 때 얼른 넣었다. 몇 번 쩝쩝거리더니 빨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거의 눕다시피 바닥에 머리를 대고 아기 고양이 입을 쳐다봤다. 아직 이빨이 없는 아기 고양이는 종이처럼 얇은 혀를 오목하게 구부려 그 위에 젖병 꼭지를 대고 앙 물듯이 고정시켰다. 금세 한 통을 비웠다. 15ml를 그 자리에서 해치웠다.
"15ml 먹었어? 너는 처음 집에 와서 우유를 40ml를 먹었어."
나도 몇십 년이 지나도 15ml를 기억할까. 엄마는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어떻게 나를 안고 먹이고 키웠을까. 내가 아기 고양이가 너무 작아서 전전긍긍하듯, 엄마도 어른 두 손바닥 만한 몸뚱이에 엄지 손가락 만한 굵기의 팔을 가진 나를 두고 조심스러워 벌벌 떨었을까.
배가 볼록 나올 만큼 넉넉히 분유를 먹은 아기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내 허벅지 위에 기어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아기 고양이를 조심히 들어 안고 침대로 갔다. 겨우내 침대 시트 아래 깔아 둔 전기 매트를 아직 치우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전원을 켜서 가장 낮은 온도에 맞췄다.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웠고, 내 배 앞에 아기 고양이를 눕혔다. 그리고 가벼운 봄 이불을 덮었다. 아기 고양이는 30초쯤 지나자 잠이 들었다. 편해 보였다. 아기 고양이의 규칙적인 숨 따라, 거친 폭풍우와 성난 바다의 물결도 잠잠해질 듯했다. 세상의 시끄러운 사건사고, 사람, 소리를 제 자리로 돌려놓을 원리는 이렇게 연약한 존재의 고요한 숨일지 모른다.
아빠와 엄마를 조용히 불러 이불을 살짝 걷고 보여줬다. 나처럼 몸을 옆으로 뉘었고, 발은 몸 앞자리에, 꼬리도 방향대로 얌전히 놓은, 세상에 끼치는 해로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 처음 그 몸을 샅샅이 보았다. 회색 털 뭉치가 아닌, 가진 그대로 내려놓은 한 생명. 연필심보다 얇은 발톱이 하얗고 가지런히 나 있다. 배 주변에는 작은 털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나비 같은 귀여운 귀가 양 쪽에 달렸다. 여전히 등뼈가 도드라져 보이고 손가락을 갖대 대면 갈비뼈가 만져지지만, 오동통 살이 오를 모습은 쉽게 그려진다. 아주 작은 이가 태어난 몫을 다하려 있는 힘껏 숨 쉬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름을 지어주자. 어떤 이름이 좋을까?"
23일에 왔으니 이삼이, 봄에 왔으니 봄이, 4월에 왔으니 사월이, 고양이는 꾹꾹을 하니까 꾹이, 복되게 살라고 복이....아빠가 말했다.
"복이, 복이가 좋은데... 아, 만복이. 만복이라고 부르자!"
자기 이름이라고 여겼는지, 두세 시간 푹 자던 아기 고양이가 눈을 반짝 떴다. 기분 좋은 웅얼거림을 몇 번 반복하다가 다시 울 것 같은 기세를 보여 엉덩이를 쓰다듬어 배변을 시키고, 다시 분유를 먹였다. 금세 눈을 끔뻑끔뻑대더니 다시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좋은 이름이다, 만복이. 오래 기억할 사랑스러운 우리 만복이.
우리 집에 만복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