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스럽겠지만, 만복이는 네가 키워야 할 것 같아. 너무 어려서 시골에 데리고 가면 안 되겠다."
아기 고양이 만복이는 원래 토 일, 이틀만 서울에 있다가 부모님 따라 강원도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무래도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나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요 조막만 한 게 가긴 어딜 가. 만복이는 여느 고양이처럼 주인 행세할 집사가 아니라 당장 어미 역할이 필요한 갓난쟁이다.
생후 10일, 1~2주 된 고양이는 아직 체온을 유지할 줄 모르고 배변도 어렵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쉽게 저체온증이 오고, 혹여 어쩌다 배변하더라도 뒤처리가 깨끗하지 않으면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 이빨이 없고 아직 무른 잇몸이라 어미의 따뜻한 젖을 자주자주 먹어야 산다. 이렇게 갓난쟁이에게는 어미가 물고 빨고, 먹이면서 키우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다. 아직 눈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고 혼자 설만큼 다리에 힘이 없으므로, 어미 주변에서 기어 다니다 허기지면 그 배 밑으로 들어가서 젖을 물고 따뜻한 체온을 덮어 잠들어야 한다. 어미가 온몸을 구석구석 핥아 주고 꽁꽁 싸듯 안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더러워지고 나쁜 병에 걸린다. 안타깝게도 만복이에게는 그런 어미가 없다.
"우리 만복이는 무슨 사연으로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헤어졌을까."
소셜미디어에 만복이 사진과 함께 살게 된 사연을 짧게, 급히 올렸다. 지인들이 답글을 주르륵 달아줬다. 대부분 경력이 제법 쌓인 집사들이다. 앞으로 준비할 물품, 주의해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글로 남겨주었다. 아기 고양이를 양육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유튜브 채널 링크를 남겨놓기도 했다. 내가 어디 사는지 아는 사람은 우리 집 근처 병원 주소를 여러 곳 남겨주었다. 다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러면서 다들 한 마디씩 더 남겼다. "고양이와 함께하게 된 행복한 삶을 축하해요! "
코숏 회색 고양이에 대해서도 검색해 봤다. 코숏은 "코리안 숏헤어"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실제 학명이나 묘종의 이름은 아니고 보통 길에서 자주 보는 길고양이를 부르는 통칭이란다. 코숏은 털의 색깔을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고등어 줄무늬를 가진 고동색 고양이는 "고등어 태비", 주황색 줄무늬를 가진 "치즈 태비", 검은 털에 코와 입, 발끝, 배가 하얀 고양이는 "턱시도"다. 몇 년째 매일 텃밭을 찾아와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고양이는 이제 보니 턱시도다.
더 있다. 흰 털과 고등어, 치즈가 섞인 "삼색이", 고등어와 치즈만 있는 "카오스". 만복이는 더 커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몸 전체가 회색 아니면 검은색인 "올 블랙"이겠다. 지금은 몸 전체가 먼지 색부터 짙은 먹색까지 섞여 있고, 각도에 따라 깊은 바다색으로 보일 때도 있다. 갓난쟁이의 경우 당장 보이는 색깔은 배냇 털일 수 있고 이후 검은 털이 자라는 경우도 있단다. 멋지고 신비로운 색깔의 털과 더불어 눈도 짙은 푸른색, 바다색인데 이 역시 앞으로 커가면서 변한단다.
만복이를 만나게 해 준 단어들을 이해했으니, 이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기로 했다. 이동 가방이 없어서 당장 급한 대로 쿠키 통을 사용했다. 잠에서 막 깬 만복이를 부드러운 수건으로 싸서 그 안에 담았다. 그리고 담요로 쿠키 통을 한 번 더 감쌌다. 그대로 들고 병원에 갔다. 간단한 진료카드를 작성했다. 곧 만난 수의사는 너무 아기여서 진료 볼 것도 없다며, 지금은 무조건 잘 먹고 잘 싸고, 따뜻하게 잘 자는 것 외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기가 잘 크면 두 달 후부터 백신 접종을 하고 더 지나서는 중성화를 하면 되는데, 그건 그때그때 병원에서 알려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의사는 덧붙여 말했다.
"어미와 너무 일찍 떨어진 아기 고양이는 아직 면역력이 없어요. 그래서 서너 달 될 때까지, 원인 모르게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기도 해요. 그건 보호자 탓이 아니고, 그냥 그런 일이 있기도 해요. 만복이는 그럴 일 없겠지만, 그래도 알고 계시면 나을 것 같네요."
수의사까지 만나고 오니 어떻게 하면 될지 조금 파악이 되면서 걱정도 되었다. 어떻게든 세상에 왔고 비록 어미와 떨어졌으나 다시 돌봐줄 이를 만났으니, 또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서 하루하루 더하고 있으니, 만복이는 반드시 잘 살아남으리라는 기대가 마음에 스미면서, 이 작은 생명과 삶이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에 어떤 책임감이 강하게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와 골판지 상자 안에 두툼한 담요를 깔아 만복이의 거처를 만들었다. 엄연한 식구가 되었으니 온전한 자기 장소가 있어야지. 아기는 잠을 많이 자야 하므로, 빛이 차단되는 게 좋고 온도가 따듯하게 유지되면서 통기가 잘 되는 게 중요하단다. 그런 점에서 골판지 상자가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그래서 상자에 창문 모양으로 네모난 구멍을 뚫고 그 외에는 역시 담요로 덮어 두었다. 500ml 플라스틱 물통 두 개를 따뜻한 물로 채우고 도톰한 스포츠 양말에 넣어서 집 안에 같이 넣어줬다. 자다가 추우면 어미 대신 껴안고 있으라고.
분유도 수의사가 가르쳐준 대로 먹였다. 초유가 들어갔다고 적힌 신생아용 분유를 10ml 남짓 젖병에 타서 서너 시간에 한 번씩 먹였다. 눈을 꼭 감고 자는 아기를 깨우는 게 미안해 그냥 두고 보다가, 너무 먹지 않아 무슨 일 날까 봐 금세 마음이 급해져, 정수리에서 등을 거쳐 꼬리까지 살살 만져 깨운 다음 분유를 먹였다. 몇 번 쩝쩝거리고 나면 등을 쓰다듬어 트림을 시켰다. 그다음으로 배변을 할 수 있게 부드러운 티슈나 천으로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고 깨끗이 닦아줬다. 이렇게 다 하고 나면 만복이는 기분이 좋은지 웅얼거렸다. 바닥을 온 힘 다해 기어 다니기도 했다. 제법 속도가 빨랐다. 그렇게 한 10분 남짓 놀다가 곧 어느새 눈을 스르륵 감았다. 그러면 다시 골판지 집 안으로 조심히 옮겨줬고, 이때 물통도 따뜻한 물로 갈아 줬다.
계획 없는 육묘에 내 일상도 바뀌었다. 서너 시간에 한 번 아기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24시간 내내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기만 집에 두고 외출할 수가 없었다. 양해를 구하면서 약속들을 취소했고 집에 머물렀다. 밤에 동네 친구가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사다 줬다. 신생아용 보드라운 담요도 가져와서 건네주고 갔다. 만복이를 돌보는 나 역시 주변의 챙김과 관심 덕분에 모든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돌보고 챙기게끔 이어진 게 아닐까. 젊은 날 엄마와 아빠가 손바닥만 한 나를 키운 그 힘이 아직 내게 남아있어, 내가 만복이를 돌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 집 텃밭을 오가며 편안히 낮잠 자던 턱시도 고양이의 여유가 내게 넉넉히 전해져, 덕분에 나도 내 삶에 기꺼이 만복이를 들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서너 시간씩 자며 아기를 돌보는 내게 먹을거리를 챙겨 주는 친구의 친절한 배려가 있어서, 나도 만복이를 처음 봤음에도, 그것도 나와 다른 종의 동물임에도 알 수 없는 뭉클한 사랑이 올라오는 것이겠지. 인간과 인간은 물론, 비인간 동물까지, 하늘의 구름과 풀잎까지, 계절 따라 바뀌는 바람결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고양이도 인간처럼 한 번 본 것은 모두 기억 보관소에 차곡차곡 저장해 놓을까. 그런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행동과 감정을 빚거나 꿈속 세상에 나타날까. 만복이의 기억 보관소에 지난 열흘 남짓은 어떤 소리, 촉감, 빛, 냄새로 남았을까.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만복이 삶에 새겨질까. 우리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이런 상냥하고 다정한 것들, 온화한 관심 덕에 살면 좋겠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서 메시지가 왔다.
"만복이 보호자님, 첫 번째 진료는 어떠셨나요?..."
이런 메시지조차 다정하게 느껴지는 초보 엄마. 잠든 만복이를 빼꼼 보며 혼잣말했다.
이렇게 예쁜 만복이 어머님은 누구야?
만복아, 어머님이 누구니?
나지, 내가 우리 만복이 엄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