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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 Jul 07. 2024

할배 응원하러 가자!

묘생 3주 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 먹는 일. 서너 시간에 한 번, 자는 아기를 살살 깨워 내 허벅지 위에 앉힌다. 이어 미리 분유를 타놓은 젖병을 45도 각도로 아기 입 앞에 가져다 댄다. 바로 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반신을 숙여 아기 입을 쳐다보다가 아기가 흥얼거릴 찰나 바로 젖병을 입에 넣는다. 그러면 싫은 티를 내다가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분유맛을 느꼈는지 이내 빨아먹는다. 나는 다시 상반신을 펴고 앉아서 밥 먹는 데 집중하는 아기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아주 작고 동그란 머리의 양쪽 위로 아직 다 펴지지 않은 귀가 쫑긋 달렸는데, 젖병을 쭙쭙 빨 때마다 그 귀를 팔랑거린다. 마치 나비가 봄바람을 타고 다니듯, 여린 나뭇잎이 그 바람결에 나부끼듯. 그래서 아기 고양이를 나비라고 부르나. 우리 집에 온 후 잘 먹고 잘 잤는지 며칠 새 체중이 조금 늘었다. 첫날은 132g이었는데 5일 만에 200g대를 돌파했다.


만복이는 여전히 하루 대부분을 자면서 보내지만 낮 동안 깨있는 시간이 하루하루 늘고 있다. 나는 대개 집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만복이의 집도 서재에 두었다. 잘 때는 침대 옆으로 가져간다. 책상에 앉아 있는 중에 작게 통통통 소리가 들려오면 만복이의 골판지 집 안을 살짝 열어 들여다본다. 꼭 뒹굴뒹굴하고 있거나, 누워서 뒷다리를 들어 올려 껴안고 있거나, 물통 위에 올라가 있다.


“요 녀석 어두운데 혼자 있는 게 심심하구나.”


한낮 봄볕이 방안 깊숙이 들어올 때는 방바닥에 담요를 도톰하게 깔아 두고, 만복이를 집에서 꺼내 놓는다. 웅크려 있거나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할 일을 조금 하던 중 다시 돌아보면 굴러다니는 건지 기어 다니는 건지 제법 넓게 깔아놓은 담요 위를 활개치고 다닌다. 벌써부터 장난꾸러기 기질이 드러난다.


담요 위 영역을 다 제패하면, 곧 네 발로 서는 시도를 한다. 네 다리는 아직 만복이의 몸을 지탱하기에 가늘고 짧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선다.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네 다리로는 넓게 벌려 바닥을 짚는다.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 마른오징어의 다리 같은, 털도 별로 없어서 붉은 살갗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은 꼬리를 몸통과 반대 방향으로 빳빳하게 뻗는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그저 타고난 대로, 알아서 하는 것일 텐데 볼수록 신기하다. 만복이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처음에는 만복이가 어미와 너무 일찍 떨어진 바람에 혹시 제대로 자라지 못할까 봐 이런저런 염려가 컸다. 하지만 이렇게 기특하게 크는 만복이를 보니, 아마 만복이가 이런 내 속을 알아차렸는가 보다.


한참 움직이던 만복이는 담요 끝에서 고새 스르륵 잠이 들었다. 방안 공기가 따뜻해서 만복이를 그냥 두었다. 대신 물통만 따뜻한 물로 갈아 채워 옆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만복이가 이미 정복한 담요의 가장자리를 둥글려 모양을 잡고 잠자는 만복이를 둘러싸게끔 만들었다. 세 시간 후로 알람을 맞춰두고 다시 내 일을 시작했다. 만복이에게 힘과 정성을 쏟고 있지만, 사실 이번 봄에 마감해야 하는 작업이 여럿이다. 그것 때문에 부모님이 이사한 강원도 집에도 못 들렸는데 24시간 돌봐야 할 아기까지 생겼으니 아무래도 당분간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만복이는 잘 먹고 잘 자면서 있어요!”


생각난 김에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만복이 사진도 몇 장 올렸다.


“만복이는 참 예쁘게 생겼다.

만복이 빨리 보고 싶다.

아기 고양이!

엄마 말씀 잘 들으면서 행복하게 지내세요.

며칠 있다가 할배 할매 만나요."


아빠가 답문을 남겼다. 만복이 보러 며칠 있다가 서울에 또 오신단다. 만복이 덕에 가족 간에 부쩍 화기애애해진 기분이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만복이 사진을 남기고, 엄마 아빠는 막 이사 간 시골집 주변 꽃과 마당, 집안 곳곳을 사진으로 보낸다.


아빠는 몇 년 동안 눈에 띄게 건강이 나빠졌다. 질환은 간경변증, 즉 간경화이다. 아빠는 원래부터 B형 간염을 갖고 태어났다고 했다. 30년 가까이 대학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며 여러 주치의의 지도 아래 몸을 성실하게 관리하면서 지냈지만, 결국 아빠 몸속 B형 간염은 간경화로 진행되고 말았다. 몇 년 전 고주파 시술을 했고 이후에는 색전술을 몇 차례 했다. 시술 후에 잠시 나아지는 듯 해 큰 숨을 몰아쉬었다가도, 곧 혈액 수치가 알람 경보를 울리면 온 식구가 가슴을 졸였다. 아빠는 완벽에 가깝도록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이었고, 실제 간 질환 환자들이 호소하는 통증도 딱히 없었으며, 식욕도 좋아서 항상 하루 세끼를 꼬박 먹었기 때문에, 아빠 자신도, 엄마와 나도 아빠라면 병을 이기고 건강해지리라 생각했다. 가끔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노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아빠의 몸 자체가 쇠약해져서일까, 독한 병에 그간 몸이 버틸 만큼 버틴 것일까, 작년 여름 지날 무렵부터 아빠는 조금씩 야위었고 활기도 잃었다. 배가 벙벙하고 불편하다고 해서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복수를 빼고 오기도 했다. 무언가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도 점점 초조해했다. 그러는 중에 엄마와 아빠는 결심을 했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공기 좋고 조용한 곳으로 가기로. 그래서 강원도 산골로 옮겨갔다.


"집 뒷산에 철쭉이 가득 피어서 정말 예쁘다.

오늘은 아빠랑 화단에 백일홍 심었어.

여름 되면 예쁘게 피니까 만복이랑 놀러 와."


아빠는 지리산 아래 작은 마을이 고향이다. 그곳에 아직 선산이 있고 먼 친척들이 살고 있다. 아빠는 열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고, 줄곧 도시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살았다. 도시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도시에서 아이를 낳아 키웠고 노년을 맞았다. 아빠 인생 가운데 지리산 아래 작은 동네에 머문 시간보다 서울에 머문 기간이 훨씬 긴데도 불구하고, 아빠는 땅 밟고 식물을 키우며 동물과 어울리는 삶을 종종 그리워했다. 계절의 변화를 손끝에서부터 느끼고,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더운 데로 사는, 땀이 적적히 베어든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일까, 꽤 긴 시간 엄마는 서울을 떠나는 것을 고민했던 것 같다. 온전한 도시 사람인 엄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롯이 아빠를 위해서였을 거다. 아빠가 처음 고주파 시술을 받은 직후에는 아예 암환자들이 모여 대체 의학에 의존해 살고 있는 숲 속 마을을 고려하기도 했고, 남양주 어디쯤 집을 지을 시도도 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긴 시간 대화 후, 또 이런저런 조사 후 강원도 산속의 집으로 옮겨가기로 했다. 처음에 나는 반대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두 사람을 설득할 요령이 없었다. 또 야위어 가는 아빠를 볼 때, 본인 바라는 만큼 흙 만지고 땀 흘리며 사는 삶도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을 돌렸다.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아빠는 그곳에서 활기를 찾는 듯했다. 통나무 집을 가꾸고, 이런저런 꽃을 심고, 잣나무 숲을 걸어 다니면서. 그 잣나무 숲에 "힐링의 숲"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고 했다.


자라면서 엄마가 아빠를 촌사람이라고 놀리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촌사람 아빠는 철철이 꽃이며 나무며 새며 백과사전처럼 빠삭하게 안다. 덕분에 서울 한복판이지만 우리 집 마당에는 언제나 꽃이 가득하다. 봄이 오면 철쭉이 만개하고 이어 냉이꽃이 핀다. 은방울 꽃과 장미가 화단에 가득한 중에 가지, 오이, 호박 등등의 손톱 만한 꽃이 피기 시작한다. 파란 상추잎들이 잔잔한 호수처럼 찰랑 거린 적도 있고, 어느 해인가는 내가 허브 잎을 따 먹고 싶다고 해서 로즈메리, 오레가노 등을 심기도 했다. 이번에 엄마와 아빠가 서울 집에 온 이유 역시 마당에 꽃을 심기 위해서였다. 그 틈에 만복이를 데려온 것이다. 아빠는 이번에 산수국을 심었다. 지금은 내 무릎만큼도 안 오지만, 잘 키우면 큰 나무처럼 자란다고 한다. 아빠는 이제부터 산수국이 내 몫이라고 했다. 산수국이 꽃을 피우고 키가 자라는 모습을 아빠가 해마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옆에서 만복이가 어엿한 고양이가 되는 과정을 아빠가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일 하겠다고 책상에 앉아 놓고는, 단톡방에 만복이 사진을 올리고 강원도 산골 소식을 듣느라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떼레렝 울리는 알람 소리에 뒤돌아봤더니 만복이가 다소곳이 앉아서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보고 있다.


"만복아! 쑥쑥 자라서 할배 할매 집에 놀러가자.
가서 백일홍 보고 오자.
엄마랑 같이 산수국도 잘 키워보자.
예쁜 꽃들 많아서 좋다. 그치?"


"히이잉"


만복이도 신난 걸까. 흥겨운, 들뜬 소리를 낸다.


꽃처럼 예쁜 만복이. 꽃 보러 가자.
우리 할배 응원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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