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바가지 10개가 필요한 순간
이 모든 것은 2021년 9월 제주도 여행을 하며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다 마치고, 팀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떠난 늦여름 휴가에서 나는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나는 나 자신을 항상 팀의 “꼬다리”라고 불렀는데, 어감이 웃기기도 했지만 실제로 나는 꼬다리였다. 멋진 학교를 졸업하고 (그것도 두 개나) 세상을 바꾸겠노라 다짐하며 시작한 직장생활은 영수증에 풀을 붙이는 것으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내 일주일의 오분의 칠은 이것보다는 더 나아야 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던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나름 꿈의 직장) 무엇보다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 제주도를 여행하며 마음을 굳힌 게 9월인데, 나는 회사에 11월이 돼서야 입을 떼었다. 일주일 동안 맹연습을 하면서 말이다. 악몽을 꿀 거 같았다. 동료들이 남은 기간 나를 외면하지 않을까, 미운 마음에 일을 몰아주진 않을까.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도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11월 둘째 주 어느 날. 나는 동료들에게 퇴사를 선언했다. 하고 나니 별거 아니였을뿐더러, 우리는 그것을 시작으로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당신이 너무 좋지만, 당신을 위해 살아줄 수는 없다. 가끔 나는 사람이 좋아서 떠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나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걸 마음에 새긴다. 흘러가는대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며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가끔 적정한 이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 쌤들 용기 바가지 좀 빌려주세요.”
웹툰 <유미의 세포>에는 용기 바가지라는 귀여운 표현이 나온다. 용기를 내야하는 상황마다 필요한 용기 바가지 개수가 다른데, 나의 용기 우물이 바닥나면 용기를 낼 수 없다. 이럴 때 방법은 다른 사람의 용기 바가지를 빌리는 거다. 다음날, 나의 동료들은 나에게 용기 바가지를 몇 개 빌려주었고, 나는 최종적으로 팀장님께 나의 퇴사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