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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 Oct 27. 2022

2. 한계

모두에게나 하나쯤은 있다. 발작버튼

사람마다 일종의 “발작 버튼”이 있다. 예를 들어 가족 또는 외모 얘기가 나오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둥. 결국 그렇게 자기 약점이 드러나는 셈인데, 내 아킬레스건을 지키고자 자기방어 기제가 나타나 더 사납게 구는 것이다. 나의 발작 버튼은 “누군가 나를 무시할 때”이다. 나는 내가 무시당하는 상황을 참을 수 없어 그들에게 더 날카롭게 말하거나, 그 상황에서 돈을 더 쓴다.


그렇다. 돈을 많이 쓰는 것. 이것이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내가 백수가 되었다는 거다. 모아둔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써야 할 돈은 오히려 더 많아진다. 누군가 나를 백수라고 무시하는 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발작 버튼이 제대로 눌린 날이 있었다. 퇴사 후 떠난 제주도 여행, 공항 면세점에서 향수를 구경했다. 여행에서 향수를 새로 사서 뿌리는 것도 좋은 추억이니 작은 사이즈를 살까 고민했다. 큰 사이즈는 정말 필요 없었다. 그런데 나를 담당하던 직원이 작은 사이즈는 없고 큰 사이즈는 12만 원이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향수를 큰 사이즈로 달라고 말했다. 향수를 사고 뒤돌자마자 후회했다. 내 돈!


그때 나는 그 직원에게 오히려 더 친절하게 “네, 고생하시네요. 많이 파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앞에 진상 손님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찌르면 더 날카로운 가시로 다른 이를 찌르는 게 아니라 그냥 “아야” 소리를 내고 넘겼어야 했다. 살 수도, 살 필요도 없던 향수를 객기 부리며 사서는 안됐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수준을 알고, 그만큼에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말하고도 행복한 사람. 나라는 사람에게 한계는 없다는 자신감보다는 나에게도 한계가 있다고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함. 이게 정답은 아니겠지만 난 그렇게 동글동글한 어른이 되고 싶다. 요즘 나는 그 향수를 뿌리며 “오늘은 좀 더 나은 어른이 되어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사진: Minjung Kim <Trace>, 갤러리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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