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나는 언제까지 신입일까?
나는 언제까지 신입일까? 올해 초 방영된 드라마 <사내맞선>에서 나를 강타했던 건 다름아닌 여주인공의 직책이었다. 27살. 96년생이라고 빼도 박도 못하게 나와 동갑이라는 설정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식품회사의 주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주임이라니!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쉽사리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막내 신입에 팀의 꼬다리인데.
내가 신입이 되어 가장 처음으로 배운 것은 닥치고 듣는 법이었다. 처음엔 이래저래 아는 체하며 해결책을 내보았지만, 지금까지 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두번째로 배운 것은 회사에서 말하는 법. 나는 때론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물었고, 때론 너무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팀장님 앞에 가기 전, 동료 선생님들은 나를 붙들고 무슨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할지, 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외부 메일이나 보고서를 쓸 때도 장황하게 적힌 내 글은 채비질을 당해 더 홀쭉하고 상냥해지고 난 다음에야 보내졌다.
세 번째로는 시간을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경력을 쌓는 것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인 2년 차에 아무리 빌어도 5년 차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꼬다리를 가장 빠르게 탈출하는 방법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나의 꼬다리 시절을 이렇게 표현한다. 만두 찜기 가장 밑바닥에서 찜 쪄지는 시기. 그 아래는 신나는 일도 특별한 일도 없다. 솔직히 출퇴근이 가장 중요한 업무 일지도 모르는 지루한 하루가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시기를 피하고서는 다음으로 갈 수 없다. 그러니 우리 꼬다리들은 그저 존버할 수 밖에 없다.
대신 신입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리자. 엄청나게 질문하고, 가열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찐하게 내 일을 사랑해 보고, 회사에 누군가를 좋아도 해봤다가 업무로 대차게 싸워보고, 사소한 디테일을 고민해 보고, 꼼꼼하게 영수증도 붙여보자. 아직 힘이 넘쳐나는 젊은 날의 신입만큼 또 회사의 싱그러운 존재가 없다. 꼬다리 만세!
사진: SBS <사내맞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