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하루. 사실 노는게 제일 괴롭거든요?
백수가 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도통 쉽지 않다.
주식 장이 열리는 9시에 일어나자 다짐했건만 침대에서 밍기적 거리다보면 10시가 된다. 아침을 먹을까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다 어느새 10시 반이 된다. 10시 반에 배가 고파 거실로 나가면 가족들은 모두 출근하고 집에는 나와 고양이 이바뿐이다. 밥을 준비하며 영상을 볼까 하는데 유튜브도 볼 게 없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들이 영상을 만들어내는 속도보다 내가 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한다. 시계를 보니 11시 15분쯤. 날짜는 기억하는데 요일을 잘 모르겠다. 주중과 주말의 경계가 사라져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어쩐지 오늘 저녁에 볼 영상이 많이 올라왔다 싶으면 금요일 저녁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소설을 쓰거나 퇴사 버킷리스트를 이루러 나간다. 일단 앉으면 쓰는 건 별로 어렵지가 않은데, 자리에 앉는 게 그렇게나 어렵다. 쓰고 있는 소설은 한 네 개가 있는데, 매일 쓰고 싶은 걸 다시 열어서 쓴다. 세상에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최근 쓰고 있는 소설은 꿈에 나왔던 이야기인데, 도스토옙스키의 <악어>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빠가 자꾸 몇 장 썼냐고 물어보는데 하루에 세 장 쓰면 많이 쓴 거라 그 질문은 보이콧하고 있다.
퇴사 버킷리스트 중 아직 못 이룬 몇 가지를 얘기하자면 손세차하기, 사랑니 뽑기, 커튼 바꾸기, 단호박 수프 마스터하기, 7월에 태어난 친구 아들 보러 가기 등이 있다. 오랜 시간 미뤄온 일들 투성이다. 내일은 손 세차를 하러갈까? 아니면 모교에 들러 후배들에게 잘난 척이나 하고 올까. 이렇게 생각만 하다 하루가 흘러가는 날도 있다.
평범한 하루 같지만 어쩌면 가장 고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삶은 엔트로피여서 가만히 있으면 망가지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라도 이 향상의 부침을 기억했으면 한다. 오늘은 꿈꾸던 국제기구에서의 필기시험이 있다.
이미 충분해. 아주 대단해. 완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