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2등에 머물고 싶은 나, 잘못됐나요?
나에게는 한 가지 이상한 습관이 있다. 바로 가장 좋은 것을 고르지 않는 습관이다.
최신형 그 전 단계 핸드폰을 사고, 가장 잘 나온 사진 대신 조금 덜 예쁜 사진을 SNS에 업로드 하고, 면접 준비를 최선보다 조금 덜 한다. 지원을 할 때는 업계의 두번째 회사가 마음이 편하다. 항상 두번째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문제인가? 나는 이를 그다지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어느날 내 인생이 모두 88점짜리 시험지로 가득 차 있는 기분이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88점. 등급으로 따지자면 B이지만, A등급과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음을 모두 인정해주는 위치. 한 문제만 더 맞췄으면 A를 맞았겠지만 고작 한 문제 따위! 라고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결과. 그러니까 나는 뭐든 잘했지만 뭐든 열심히 하지는 않았고, 말 그대로 뭐든 미적지근한 상태로 하는 습관이 깃들어버렸다.
삶을 88점 시험지로 채워왔음을 깨달은 그 날, 나는 단박에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최선을 다하고 패배하는 나를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최선에서 항상 두 발자국 물러서면 나의 모자랐던 노력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실패를 하면 나는 나 자신이 모자랐음을 인정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대학입시는 지금 다시 돌아봐도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던 몇 안되는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상향지원한 학교를 모두 떨어지자, 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거나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야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나는 주변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말했다. “대학원을 그 학교로 가라는 뜻인가봐.” 나는 헛소리를 선택했다.
내 경험상 88점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안좋다. 물은 100도에서 수증기가 되지, 88도에서는 절대 그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따라서 88점에는 자기만족 그 이상은 없다. 열정은 아등바등 사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불썽사납게 간절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88도에서 멈추면 안된다. 그 꼴사나운 12도의 열정을 더 태워야 88도의 소중한 노력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사진: 이배 <불로부터>, 2020 아트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