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과 소개팅은 정말 닮았다. 아니, 똑같다.
올해가 시작하면서 나는 두 가지 큰 계획을 세웠다. 바로 이직과 연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100일도 안 남은 지금, 나는 두 가지 모두 이루지 못했다. 망할.
이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로는 경쟁자들이 있다. 아무리 내가 잘난 사람이어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최소 세 번의 험난한 검증을 통해 경쟁자를 제쳐야 한다. 셋째로는 좋은 건 이미 임자가 다 있다. 좋은 회사? 이미 엄청난 스펙의 사람들이 24살 때부터 꿰차고 들어가 앉아있다. 좋은 남자? 이미 예쁜 친구들이 22살 때부터 사귀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서류전형은 통과인데 인터뷰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는 거 보면 말이다. 작년 11월, 이직을 결심했을 그 즈음 나는 내 인생 첫 소개팅을 가졌다. 친구가 내 사진과 간단한 이력을 보내자 그는 바로 승낙했다. 그렇게 일사천리에 잡힌 소개팅. 나는 소개팅에서 나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알 수 없어 더욱 긴장이 되었다. 나는 얼어붙을 것인가, 아니면 내숭을 떨 것인가?
나는 모든 예상을 뛰어넘고 아주 능숙하게 소개팅을 주도했다.
다만 너무 주도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단 3초의 침묵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했고 그는 계속 대답했다.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리고 이 대화의 편중을 느꼈을 때는 이미 1시간 반이 흐른 뒤였다. 나는 나의 30년 뒤 미래 계획까지 다 말했는데 정작 그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소개팅을 계기로 나는 여유의 품위에 대해 배웠다. 무언가를 너무나 갈망하는 사람에게서는 매력이 반감된다. 취직과 소개팅은 그런 면에서 또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나같이 상상력이 과히 풍부한 사람은 매번 지원을 하며 그 회사의 일원이 된 걸 상상하고, 소개팅을 하면 결혼까지 고민하기 때문에 안 그러기가 쉽지 않다. 어제 친구가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 줬다. 이번엔 조급해 하지 않고 여유롭게. 나의 계획보다 운명에 맡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