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씨와 같은 암에 걸렸던 나의 기억을 되짚어 보며...
윤도현씨의 암투병 기사를 접한 뒤, 아내가 나에게 해줬던 그때의 말과 나의 기억을 기록해 두고자 한다.
그가 암 진단을 받은 1년 뒤에 나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위에 림프종이 발견됐다.
회사 복지로 서울대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다. 복지인 만큼 지원되는 금액 제한에 맞춰 생애 처음으로 대장과 위 내시경을 선택했다. 그때까지 나는 내시경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아직은 젊다는 착각을 했었다.
서울대 병원 검진 센터는 고객 경험에서 특별함을 느끼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검진 결과를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전화로 말씀주시는 것이다. 전화가 올 예정인 시간에 나는 의사 선생님이 하실 말씀을 예상했다. 살이 많이 쪘으니 지방간을 조심해야 되고 다이어트를 하셔야 된다. 혈압이 높으니 다이어트를 하고 식사를 조절해야 된다 등. 전화기 너머의 의사분의 목소리는 담백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담백한 목소리로 '림프종'을 차분히 이야기 하시니 조금은 차갑게 느껴졌다. 헬리코박터균에 의한 림프종으로 분류상으로는 암이라고 보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암과는 달라서 약물 치료로도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친절한 설명에도 어조의 변화는 없었다.
다른 방에 있던 아내가 '림프종이요?'라는 내 목소리를 듣고는 내 옆에 앉았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진료 예약을 안내 하시는 것 외에 다른 말이 필요치 않았다. 자세한 말은 진료시에 나눌 것이기 때문에. 아내의 표정에 작은 변화가 느껴졌다. 간호사인 아내는 내 진료일에 오프를 신청했다. 우리는 혜화역에 있는 서울대 병원 대한 외래에서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다. 교수님은 약으로도 고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 처방을 받았다.
윤도현이 말한 바와 같이 약물치료 2주를 한 뒤 경우에 따라서는 항암치료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3분 정도 걸렸었나. 진료실을 나와 다음 위 내시경 날짜를 잡았다. 오전 반차를 내서 온 거라 함께 밖에서 점심을 먹은 뒤 나는 출근했고 아내는 집으로 갔다. 진료 마치고 나오는 길에 교수님께 물었다. "약물 치료로 완치 되는 비중은 통계적으로 몇 퍼센트 정도인가요?" 교수님은 '70~80% 정도'라고 답하셨다. 아내의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약물 치료에 차도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몇 개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검사 후 나는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동안 위 내시경은 4번? 정도 했던 것 같다. 나와 아내는 감사한 마음을 공유했다. 그렇게 좋은 맺음을 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그때의 기억을 덮고 있었다.
그런데 약 두 달 전 아내가 그 과정에서 있었던 당신의 심경을 이야기해줬다. 아내는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결혼하고 항창 재밌게 살아가고 있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온 느낌을 받았다고. 아내는 대학병원 간호사라 검진센터에서도 일한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수 많은 암 검진 결과들을 봤는데 내 진단명은 처음 듣는 것이라고 했다. 그냥 위암 같은 진단이면 숱하게 봤던 진단들 중 하나로 생각해서 조금은 나았을 텐데, 휘귀성 암 진단명을 듣고는 앞이 깜깜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진료를 볼 때, 나는 70-80%가 약물로 완치 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아내는 20~30%가 치료에 실패하고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속으로 울었다. 감사함도 있었고, 부끄러움도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아픔이 오지 않게 내 몸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식사를 조절했고 간헐적 단식을 유지했다. 달리기 시작했다. 시련이 될수도 있었던 질병을 나는 가볍게 넘겼고, 아내의 걱정을 알게 된 뒤 가볍게 감사하고 일상으로 묻었을 일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아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건강한 내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11키로를 감량했다. 홍제동에서 뛰어서 망원동 한강 공원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초고도 비반에 찐 살이 워낙 많아 가야할 길은 많이 남았다. 아내와 함께라면 갈 수 있다. 지금 이순간 이렇게 글을 쓰고 다짐할 수 있음에 다시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