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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이 Dec 14. 2022

집순이는 연차 때 뭘 할까

거창하진 않아도 행복해

지난주 무작정 연차를 냈다.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기도 했고, 늘 똑같은 출퇴근길 풍경에 환멸을 느껴 아무런 계획 없이 일단 연차 서류부터 올렸다


사실 연차결심한 그 간만큼은 '이번에는 여행도 가고, 알차게 보내야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대에서 물거리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시작부터 지 않았다.


'일단 일찍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에 오전 9시 30분 알람을 맞춰놨으나, 역시나 11시쯤 느지막이 일어났다. 그러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연차 뭐 별거 있나' 하는 마음에 그간 회사에 치여 못 누렸던 일상을 즐기기로 했다.


병원 가기

난 감기가 이렇게 독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코맹맹이 소리가 난 지 2주가 넘었는데도 낫질 않았다. 또 잦은 기침으로 이제는 기침을 할 때마다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사실 감기는 그냥 시간 지나면 낫는 질병으로 생각해 방치할 때가 많았는데, 이번 감기는 그저 그런 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첫 행선지는 병원으로 정했다. 우리 동네 내과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름 입소문 난 곳이라 대기 시간만 1시간쯤 걸린다. 날이 어둑어둑해진 퇴근길에는 병원을 가도 허탕 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역시 연차인 오늘은 병원도 여유로웠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 맞춰 가자 운 좋게도 바로 내 이름이 불렸다. '역시 연차가 최고군'하는 생각과 함께 진료를 받았다.


참고로 하도 낫질 않아 코로나나 독감을 의심했는데, 다행히(?) 비염과 몸살이 함께 온 거라고 한다. 푹 쉬면 낫는다고 하니, 오늘 연차 쓰길 잘했다 싶었다.


카페에서  읽기

두 번째 행선지는 카페다. 물론 집순이는 집 밖을 멀리 나가지 않에 집 주변 카페로 정했다. 평소 가보고 싶었는데, 좌석이 많지 않아 혼자 가기는 엄두가 안 났던 곳을 마침내 오늘 갔다. 아메리카노 한잔에 내가 좋아하는 재즈풍 음악까지 들리니 금상첨화였다.


카페를 자주 가는 편이긴 하다만, 주로 할 일이 있을 때만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밀린 업무를 해야 하거나 이력서 등을 쓸 때 말이다. 오늘처럼 할 일이 없는데 가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카페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책 한 권을 챙겼다. 얼마 전 김유담 작가의 소설 <커튼콜은 사양합니다>를 읽고, 책 읽는 즐거움에 다시금 빠졌다. K-직장인의 비애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책인데, 이 책을 읽을 당시 시간적 여유가 없어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오늘은 시간도 여유롭겠다, 원래 읽고 싶었던 책인 최인철 저자의 <프레임>을 읽었다. 책 속 좋은 구절이 꽤 많았는데 지금 당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라는 문장이다. 퇴사를 고민하는 시기에 내게 작은 용기를 불어준 문구다.

우리 동네 카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또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실패 가능성에 주목한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 또한 내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실패 가능성에 먼저 주목해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려는 습성이 있다. 20대는 부딪혀도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이라고들 하지 않나. 실패 가능성을 생각하지 말고, 내가 세운 기준에 맞게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코인 노래방

내가 스트레스받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코인 노래방이다. 원래는 1000원에 4곡 하던 곳이 1000원에 3곡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사치 중 가장 큰 사치다. 내게 붕어빵 3마리보다 더욱 값진 게 코인 노래방 3곡이다.


노래방에 가면 부르는 노래는 거의 똑같다. 체리필터, BMK, 버즈 등 옛날 노래 듣기를 좋아하는 고리타분한 성정 때문에 2000년대 노래만 부른다. 그 와중에 옆 부스에서 아이돌 노래가 들려오면 새삼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체리필터는 포기할 수 없.


필라테스

마지막 일정은 운동이다. 사무실에서 항상 고개를 쭉 뺀 채로 노트북을 보다 보니 거북목에다 라운드 숄더까지 가진 무지막지한 체형이 됐다. 또 원래도 골반 비대칭이 심했는데, 양반다리를 하도 하다 보니 비대칭의 정도가 더 심해져 필라테스를 다니게 됐다.


운동이란 게 참 그렇다. 할 때는 너무 힘들고, 내가 내 돈 주면서 이런 고통을 왜 감수해야 하냐고 속으로 온갖 나쁜 생각을 해도 끝나고 나면 무엇보다 성취감이 크다. 이런 성취감 때문에 필라테스를 끊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운동 후에는 먹고 싶었던 연어롤을 시켜먹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그간 연어롤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드디어 먹었다. 역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지나 보다. 이만하면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낸 듯하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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