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경남에서만 2n년을 거주했다. 심지어 부모님과 친척들 모두 생애 전부를 경남에서만 살았을 정도로 토박이 중 토박이 집안에서 태어났다. 지방에 뿌리를 너무 깊게 내려버린 탓에 딱히 서울에 입성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학업과 직장을 이유로 서울행을 결심했고, 어느덧 서울 생활 8년 차에 들어섰다. 여전히 사투리가 묻어나는 말씨지만, 이제는 전입신고까지 마친 '진짜' 서울 사람이 됐다.
오늘은 그간 서울에 살면서 느꼈던 점을 토대로 글을 써내려가보려 한다.
# 어딜 가나 많은 사람들
'세상은 참 넓고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울에 와서 새삼 체감했다. 2n년간 지방에 살면서 사람들 틈에 끼여 버스를 탔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하지만 서울은 이런 생활이 일상인 곳이다.
또 지방에서는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을 가도 웨이팅하지는 않았다. 기다린다고 해도 15분 안팎인 경우가 많아, 밖에서 멍때리다 보면 금방 가게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서울은 맛집이라고 소문나지 않은 곳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거기다 방송에 몇 번 출연한 소문난 맛집을 가려면 일찍부터 출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운 좋게 맛집에 바로 들어간다고 한들, 좁은 테이블 간격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로 인해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심지어 밥을 먹다가 음식점 밖에서 기다리는 이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스레 허겁지겁 먹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는 에너지가 금방 소진되는 내게 서울은 이런 점에서 참 힘든 도시였다.
# 자동차보다 지하철과 자전거
지방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운전면허학원을 등록했다. 나 역시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20대 초반 면허증을 땄다. 마음 한편에서는 '자차도 없는데 굳이 빨리 따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당시 부모님은 "지금이 아니면 면허증을 따기 어렵다"고 채근해 나의 첫 자격증은 운전면허증이 됐다.
사실 지방에서운전면허만큼중요한자격증은없는듯하다. 대중교통이 워낙 불편하다 보니 자차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곳을 빠르게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방은 지하철이 없기에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버스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버스 배차간격이 서울에 비해 긴 편이다. 보통 10분 안팎인데, 버스를 하나 놓치게 되면 약속 시간에 최소 10분은 늦는 셈이다. 그렇기에 보통 버스가 오는 시간을 미리 체크해서 나가거나, 조금 더 서둘러 나가곤 한다.
출근길 2호선에서 본 일출.
반면 서울은 다르다. 서울에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교통이편리하다는 것이다. 교통카드 하나만 있으면 서울 전역을 갈 수 있는 것은 물론, 경기도 등 수도권 거의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배차간격도 비교적 짧기 때문에 열차 하나를 놓쳐도 큰 부담은 없는 편이다.
또 서울은 자전거 타는 사람이 참 많다. 자전거 초보자인 나는 이들을 보면 참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들도 많은데 어찌 그리 틈을 잘 비집고 자전거를 타는지, 부럽기도 하다.
물론 지방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긴 하다. 하지만 보통 무더운 여름이나 눈 내리는 겨울에는 자전거 타는 이들을 보기 힘들다. 그런데 서울은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사계절에 상관없이 자전거 타는 이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 문화생활의 중심지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확 와닿을 때가 바로 문화생활을 즐길 때다. 지방에 살 때까지만 해도 전시회나 연극 등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말을 바로 하자면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위해선 부산으로 갔어야 했는데, 전시회 하나를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부산으로 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최우람-작은 방주展
하지만 서울은 금전적·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언제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문화생활에 큰 관심이 없는 나만 해도 올해 전시회를 5번은 간듯하니 말을 다 한 셈이다. 전시회 간 사진을 SNS에 자랑하고 나면, 고향 친구들은 꼭 "서울 사람 다 됐네?"라고 농담을 건네곤 한다. 그럴 때면 새삼 서울이 문화생활의 중심지인 것을 깨닫는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문화생활의 중요성을 체감한다. 일상이 쳇바퀴처럼 '회사-집-회사-집'을 반복하다 보니 일종의 탈출구가 필요해지는데, 문화생활만큼 좋은 탈출구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