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단이 Dec 20. 2022

내가 퇴사를 '못' 하는 이유

내년 2월엔 벗어날 수 있을까

좋다. 목표는 '내년 2월 퇴사'다.
1월에 떡값 받고, 2월에 연차 소진하고 바로 퇴사해버리자.
그리고 3월에는 무작정 해외로 떠나자!


내가 세운 내년 목표다. 잦은 조직개편, 수직적인 조직문화, 낮은 성장 가능성 등으로 지쳐버린 나는 올해 '퇴사'를 꿈꿨다. 그러나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결국 퇴사를 미뤘다.


지인들은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날 보며 "왜 아직도 그 회사에 있느냐"고 묻는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못해 우울증 약까지 먹었으니, 다들 미련하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난 아직도 "퇴사를 '' 하는  아니고, '' 하는 거다"고 답한다.


대학생 때 얼결에 취업한 나는 제대로 된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증 하나밖에 없다. 경력을 살려 이직하기에는 '제대로 된 경력'도 없는 듯하다. 고용시장은 점점 추워진다는데, 나는 고용한파를 뚫고 이직할 수 있을까? 사실 난 자신이 없다. 내가 자신 없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친구한테 보낸 메신저 내용



# 혹시 내가 물경력은 아닐까?


이직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참고로 '물경력'은 업무 관련 핵심역량을 쌓지 못한 채 연차만 쌓인 것을 뜻한다. 회사에 다닌 지 어느덧 3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인턴 기간까지 합치면 장장 4년을 한 회사에서 일했다. 결코 오래 일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입'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연차가 됐다.


그런데 난 지금도 갓 들어온 인턴과 별다를 바 없는 업무를 하는 느낌이다. 물론 처음에는 좋았다. 일이 쉽고 손에 익으니 빨리빨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 경력기술서를 작성할 때도 물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고용시장에서 나를 멋있는 사람으로 포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갈피를 잃은 나는 유튜브를 통해 '경력기술서 작성법'을 검색하기도 했다. 취업에 일가견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경험을 수치화하라'고 했다. 예를 들어 '내가 기획한 마케팅 활동 덕에 상품 매출이 20% 늘었다'는 식으로 기술하라는 게 영상의 포인트였다.


그러나 나는 글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글은 수치화하기 어려운 수단이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들은 모두 고위직에서 성과를 판단하기 때문에 나 같은 말단사원은 어느 정도 회사에 기여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구조다.


결국 별볼일 없는 자기소개서 때문인지 하반기에 넣었던 기업들은 서류에서부터 탈락했다. 겉으로는 "괜찮아, 지금 직장이 있으니까 간절하지 않아서 떨어졌나 봐"라고 말해도 아픈 속은 달랠 길이 없었다.


# 내년 고용시장은 더 힘들다던데.


요즘 기사를 보면 청년 실업률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물론 회사를 다니던 3년 간은 나와 연관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직을 결심한 후 청년 실업률 기사가 이상하게 눈에 띈다.


특히 기사에 따르면 내년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단다. 경제 성장률이 올해보다 더욱 하락하면서 아예 채용을 하지 않거나 채용을 줄이는 기업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지금 퇴사해도 되는 걸까'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정규직'이라는 안정적인 지위를 포기하고, 취업시장으로 다시 나가는 게 어쩌면 무모한 도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나만 생각할 순 없잖아.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를 지원했다. 자소서에 넣을 경력을 쌓는 게 목적이었기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퇴사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첫 회사를 취직했다.


그러나 어느새인가부터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 돼있었다. 물론 자식 자랑을 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 부모님께 실망감을 안겨 드리는  무섭다. 


퇴사가 실패는 아니지만, 부모님의 직장 가치관은 나와 사뭇 다르다. 부모님 세대가 으레 그렇듯 우리 부모님도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기에 내가 퇴사 얘기를 꺼내면 주로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신다. 이런 반응 때문인지 이상하게 사직서를 내려고 결심하면 부모님 얼굴이 선명히 떠오른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거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나로 두자'고 생각해도 내 세상은 아직 부모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 당장 필요한 돈은 어떻게 마련하지?


여유가 있으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돈에서 나오는 여유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면 수입원이 끊긴다. 투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닌 내가 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 서울 자취를 포기하고 캥거루족이 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사진=MBC '무한도전'


# 남들은 다 일하는데 초조하지 않을까?


대학교 4학년 시절의 나는 굉장히 예민했다. 당시 동기들이 서서히 취업계를 내기 시작하고, 친한 선배들의 취업 소식이 줄줄이 들려오면서 초조함을 느꼈던 듯하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고 수십 번 다짐했지만, 항상 기분이 태도가 되고 마는 나는 당시 주변인들에게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냥 하소연만 하면 다행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없어지고 말수도 적어지니 지인들은 내 눈치를 보기 바빴다. 이런 내 모습이 싫어 결국 여러 회사에 서류부터 넣었고, 현재의 회사를 다니게 됐다.


비록 짧은 취준생 기간이었지만, 저 때 느꼈던 예민함은 아직 선명하다. 20대 후반의 내가 그 초조함을 다시 견딜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지인들은 물론 나보다 어린 후배들, 사촌동생들까지 하나 둘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남 눈치를 보지 않으려 하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참 남의 눈치를 계속 보게 된다. 남이 일하면 똑같이 일해야 할 것 같고, 남들이 놀면 놀아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남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내 속도에 맞춰야 하는데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점심 메뉴는 막내가 골라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