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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이 Dec 23. 2022

"부장님, 건배사 좀 그만 시키세요"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

연말연시, 바야흐로 '회식의 계절'이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에 돌입하면서 회식 문화가 사그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과거에 비해 줄면서 회식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물론 좋은 동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그러나 '회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압박감이 있다. 


보통 회식에선 '불편한 상사'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으며, 심지어 '일 이야기'까지 나눠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거기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리듯 '꼰대 상사'와 함께 있다면 스트레스는 배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이번 회식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코다리찜과 막걸리를 곁들여 먹으며 인고의 시간을 버텼다. 모든 시간이 힘들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은 부장님의 건배사 요구가 시작됐을 때였다. 


사실 우리 회사에서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우리 부장님은 술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건배사를 요구해 이미 사내에서 '건배사 빌런'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건배사를 하냐"는 한 선배의 말에도, 부장님은 꿈쩍도 않고 "난 건배사 시간만 기다려~ 애들도 다 준비해 왔어~"로 응수한다. 그럼 부장님을 제외한 직원들은 주머니에 숨겨놨던 휴대폰을 꺼내든다. 필시 나처럼 '술자리 건배사'를 검색했을 것이다.


부장님과 술자리를 몇 번 가져본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다. 심지어 20명이 넘는 회식 자리에서도 모두에게 건배사를 시킨 전적이 있는 인물이기에, 오히려 건배사를 안 시키면 이상할 정도였다. 심지어 운이 좋지 않을 경우, 한 자리에서 건배사를 2~3번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 동료의 카톡이다. 또 시작된 '건배사 빌런'의 폭주.


이번 회식은 날 포함해 1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참여했다. 다들 건배사에 대한 고민을 안고 회식에 참석했으리라.


나 또한 미리 건배사 구호를 준비해 갔다. 바로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나 '이멤버! 리멤버!'다. 사람들의 뇌리에 남지 않는 가장 무난한 구호라고 생각해 두 가지를 선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고, 저 구호를 탐내는 사람들은 많았다는 데 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고 있었건만, 이미 앞차례 동료들이 저 구호를 외쳐버렸다. 


'큰일 나버렸다. 어떡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건배사 좀 생각해 올걸. 오글거리지 않고 밋밋한 건배사 없나.' 고민하던 중 내 이름이 불렸다. 


부장님 : 자 이제 강단이가 한번 해볼까?

강단이 : ㄴ..네??? 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부장님 : 건배사를 왜 준비해. 그냥 상황에 맞게 하는 거지.


대충 위와 같은 상황이 전개됐다. 결국 승자는 부장님이었다. 슈퍼을인 내가 어떻게 슈퍼갑인 부장님을 이기겠는가. 시간은 흐르고 부장님의 눈초리도 더욱 매서워져 결국 미친척하고 '부장님' 삼행시를 하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나도 저 때 취기가 있었던 듯하다.


부 : 부장님!

장 : 장난 아니고 건배사 너무 힘들어요! 

님(임) : 임기응변도 한계입니다. 슬슬 집가죠!


임기응변에 맡긴 거치곤 나름 괜찮은 삼행시아닌가? 분위기도 다들 좋았다. 물론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실제로 저 이후에 부장님은 취하셨고, 우리는 정말로 귀가하게 됐다.



회식 다음날 괜히 눈치가 보여 부장님을 피해 다녔는데, 내게 이렇다 할말이 없으셨던 거 보면 기억을 못 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됐든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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