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여름과 영하의 이르쿠츠크

762개의 커브, 빠의 찬미

by 강양


나이트 근무를 하던 어느 날. 트위터에서 본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건 누군가 꽁꽁 숨겨 놓은 보물지도 같았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dm을 보내 사진의 장소를 물었다. 그곳은 바로 태국의 북부 마을 빠이 pai 였다. 빠이? 어디서 들어본 듯한데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구글 지도를 켜 빠이 pai 를 검색했다. 라오스와 미얀마 사이에 있는 그곳은 까마득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태국에서 가본 곳이라곤 방콕 밖에 없었는데 태국 북부의 시골마을이라니. 생각만 해도 설렜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검색창에 '빠이'를 매일 찾아보았다. 그곳엔 뭐가 유명한지, 어떤 숙소가 있는지, 어떤 카페가 있는지, 날씨는 어떤지를 빠짐없이 찾아보았다. 에어비앤비를 켜 '빠이'라고 검색하면 온갖 종류의 숙소가 넘쳐났는데 나무로 된 오두막부터 풀장이 딸린 초호화 호텔까지 비용도 만원 언저리부터 몇 십만 원까지 다양했다.


라오스에서 치앙라이, 치앙마이까지 여행을 하고 빠이로 들어가는 날이 되었다. 숙소 앞에서 빠이로 가는 밴을 기다렸다. 예약 시간이 한참 지나 도착한 밴은 장난감처럼 생겼고 안에 사람들이 꽉꽉 차있었다. 숨 쉴 구멍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조수석에 탈 수 있었는데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밴은 치앙마이를 떠나 험한 비포장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어떤 동생은 치앙마이-빠이가 악명 높은 구간이랬다. '멀미약 꼭 먹어야 돼요. 아니 커브가 762개라니까요' 그 동생은 남색 바탕에 수박과 파인애플이 그려진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야시장 한 카페에서 빠이의 762개의 커브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 나는 라임이 올려진 진토닉을 마시고 있었다. 으음, 커브가 그렇게 많다는 말이지? 나는 그 이후로 멀미약과 빠이와 몇 개의 커브를 잊고 있었다. 밴이 흙먼지를 날리며 구불구불한 길을 달릴 때, 문득 수박이 그려진 옷을 입은 동생이 생각났다. 여행 후 그 옷은 어떻게 됐을까. 차가 흔들릴 때마다 후사경에 달린 플라스틱 고리가 시계추처럼 움직였다. 거기엔 기사님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진이 있었는데 너무 흔들리는 바람에 웃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차 안은 고요했다. 덜컹, 쿠쿵- 하는 소리와 자동차 계기판 소리, 기사님의 특이한 추임새를 제외하면 그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뒤를 살짝 돌아다봤다. 뒷좌석의 사람들은 초토화된 채 목 뼈가 부러진 사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을 모두 멀미약을 먹은 걸까? 기사님도 멀미약을 드실까? 나는 물어보려다가 멈칫하고 멀미약이 영어로 뭔지 열심히 생각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멀미약이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 배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유심이 없어 인터넷도 되지 않았으니 결국 나는 알아내지 못하고 기사님도 멀미약을 드시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빠이는 생각보다 멀었다. 나는 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잠도 오지 않아 커브를 세어 보기로 결심했다. 서른 하나, 서른둘, 서른셋....... 구십 오 , 구십 육.... 백삼십육, 백삼십칠....... 숫자가 두 자리에서 세 자리가 되는 동안 차는 멈추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문 밖의 풍경은 비슷비슷했다. 높은 건물 하나 없고, 옥수수처럼 생긴 밭이 나왔다가 바나나가 달려 있는 나무들도 보였고 뒤에 뭔가를 잔뜩 싣고 달리는 오토바이와 내가 탄 것과 똑같이 생긴 흰색 밴이 내가 탄 밴을 초월해서 달렸다. 밴 위에는 캐리어와 배낭, 가방들이 밭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를 켰다. 김세희 작가가 나오는 편이었는데 작가의 나긋한 목소리와 진행자의 둥글둥글한 목소리가 귓가에 쏙쏙 들어왔다.


마을에 가까워지는지 이정표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꼬부랑 기어가는 태국 글자는 아무리 쳐다봐도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이국의 느낌이 물씬했다. 똑같아 보이는 저 글자들이 어떻게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걸까. 태국어도 성조가 있다던데. 성조가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감이 들었다. 차가 점점 속력을 줄이더니 옆에 앉은 기사가 사람들에게 뭐라고 외쳤고 차는 멈췄다. 그들 역시 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하나둘씩 부스럭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밴에서 무려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길거리에 덩그러니 놓여졌다. 텅 빈 밴은 먼지를 휘날리며 떠났고 남겨진 사람들의 표정은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듯했다. 나는 배낭을 메고 밴이 지나간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예약한 숙소로 가기 위해 구글 지도를 켰다. 100미터쯤 가니 상점들이 보였고 색깔만 다르고 똑같이 생긴 스쿠터가 열대 가량 세워져 있었다. 갓길에는 플라스틱 의자와 정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이 일렬종대로 줄지어 있었고 액상 조미료들과 나무젓가락이 한 움큼씩 꽂혀 있었는데 영업 중인 식당이 맞는지 의아했다. 분명 이곳은 치앙마이와는 다른 분위기가 풍겼다.


구글지도의 화살표를 따라 마사지샵 몇 개를 지나고 나무 합판에 햄버거가 그려진 가게를 지나 코너를 돌았다. 왼쪽에 '30밧 덮밥'이라고 쓰여진 가게가 있었다. 모든 메뉴가 30밧인 것 같았다. 그런데 온통 파란색 천막으로 덮여 있어 오랫동안 장사를 하지 않은 건지, 우연히 쉬는 날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아래로는 요가원이 하나 있었는데 입구에 이름 모를 분홍색과 보랏빛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예약한 숙소는 요가원 옆이었다. 반 마이삭이라고 영어로 적힌 팻말이 보였다. 녹색 페이트가 칠해진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자그마한 공터와 짙은 색의 마룻바닥이 보였다. 마루 기둥에는 해먹이 두 개 걸려 있었다. 신발장과 문은 따로 있었지만 거실로 보이는 공간의 큰 미닫이 문은 열려 있었다.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는 쪽지와 작은 종이 올려져 있었다.


-아무도 없으면 종을 울려주세요


종을 들고 가볍게 손목을 흔들었다. 찰랑- 높고 얕은 종소리가 거실 안에 울려 퍼졌고 귓가에 여음이 사라질 때쯤 민소매를 입고 앞머리를 기른 마른 체형의 남자가 나타났다.



-3일 예약했지?

-응. 그런데 연장할 수도 있어

-그래. 얼마든지. 방 보여줄게



나는 배낭에서 여권을 꺼내 현금으로 숙소비를 지불했다. 돈을 받아 든, 민소매를 입고 머리를 기른 마른 체형의 남자는 자기를 켄이라 소개했다. 켄은 내 여권을 보더니 자기가 할 줄 아는 한국어 몇 개 , 안녕하세요, 오빠, 최고예요, 좋아요. 라고 하면서 공책에 내 이름을 적었다. 켄은 태국 사람이라기엔 인상이 희미했는데, 내가 봤던 태국인의 이미지는 진한 검은 머리에 그을린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인 반면 켄은 오히려 일본 사람이라면 더 믿을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켄은 어머니가 중국사람이고 아버지가 태국인이라고 하면서 중국어와 말레이시아어, 태국어, 영어까지 총 4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내게 말했다. 세상에, 성조가 있는 언어를 하나도 아닌 둘이나 쓸 수 있다니. 켄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는 오케이하고 방을 보여달라 말했다. 방은 대체적으로 깔끔했고 무엇보다 에어컨이 있었다. 동남아에서 에어컨이 딸린 도미토리에 지내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 오성급 호텔에 머무는 것과 같았다. 비록 바다가 보이는 객실이나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한식, 중식, 양식 레스토랑이 딸린 곳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국에 고급호텔도 많습니다.) 켄이 한창 숙소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내 눈은 에어컨을 찾았다. 에어컨은 창문 위 천장에 보기 좋게 붙어 있었다. 나는 다른 설명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오케이, 땡큐를 남발했고 켄은 쿨하게 퇴장했다. 도미토리엔 두 개의 이층침대로 네 명이 잘 수 있는 방이었다. 이층 침대 간의 간격은 성인 남성이 팔을 뻗고 누울 수 있는 정도였고 문 옆에는 거울과 작은 화장대와 그 아래엔 자물쇠가 딸린 사물함이 네 개 있었다. 나는 먼저 카메라와 지갑, 여권을 넣고 배낭을 풀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늦게 왔는지 자리는 이층이었다. 하지만 천장에 있는 에어컨과 마주 볼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나는 대충 짐을 부려 놓고 밖으로 나왔다. 해먹에 누워 볼까 하다가 나중에 실컷 하기로 하고 30밧 덮밥집으로 갔다. 그런데 여전히 가게는 닫혀 있었다. 골목은 휑했다. 가게마다 문이 굳게 잠겨 있었고 마치 전쟁 중이나 전염병이 휩쓸고 간 마을 같았다. 내가 생각한 빠이는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사진으로 봤던 광활한 평야와 하얀 폭포가 쏟아지던 계곡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숙소에서 나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등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자그마치 33도였다. 체감온도는 50도에 육박했다. 이대로 걷다간 바싹 말라버려 가루가 될 것 같았다. 밥을 먹기로 한 나는 쉴 수 있는 카페를 찾기로 했다. 구글지도에는 분명 몇십 개의 카페가 커피 잔으로 찍혀 있었지만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가게는 몇 없었다.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태국의 공휴일인가? 그래도 여긴 관광지가 아닌가? 시에스타 뭐 그런 거 비슷한 건가? 나는 그냥 그늘진 곳에 앉기만 하면 됐다 싶어 아무 곳에나 들어갔다.


머리에 띠를 두른 주인이 뭐라고 중얼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문 앞에는 open 이라고 팻말이 쓰여 있었는데 주인의 말이 '아직 영업시간이 아닙니다' 라는 건 아닐 것 같았다. 가게엔 에어컨은커녕 천장에 팬은 굴러가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늘진 곳에 들어오니 소사는 면한 것 같았다. 나는 땡모반 하나를 주문했는데 태국의 땡모반이 다 맛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카페는 낮은 계단으로 1층과 2층이 구분되어 있었다. 1층에는 작은 협탁 과 의자, 햇빛으로 달구어진 쇼파가 있었고 이층에는 좌식으로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세 개 있었다. 커피를 주문할 걸 그랬나? 원두향이 코 끝에 스치는 게 보통 맛이 아닐 것 같았다. 한 잔을 더 주문할까 하다가 배가 고파 자리에서 일어났다. 땡모반 하나 마셨을 뿐인데 시간이 벌써 저녁으로 가고 있었다. 하늘색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폐허 같았던 마을과 골목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누군가 마법을 부린 양 가게들은 멀쩡히 열려 있었다. 야시장처럼 노상 음식점이 펼쳐졌고 보헤미안들이 돗자리 위에서 팔찌와 목걸이 같은 것을 만들고 팔고 있었다. 나는 걸어왔던 길을 되짚으며 두리번거리면서 걸었다. 그렇다 여기는 밤의 천국이었다. 낮에 잠들고 밤에 깨어나는 마을. 밤으로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