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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Jun 22. 2022

선 퇴사 후 고민

퇴사 후에 오는 것들 

퇴사하면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지만, 혹은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지만 시작 중의 시작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시간은 물 흐르듯 흘렀고 통장은 비어있었다. 첫 퇴사 후 6개월간은 외국에서 지냈다. 전혀 다른 공간,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언어를 쓰면서 넓어가는 나의 세계를 상상했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했고 또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나에게 없었다. 그저 나는 외국에서 좀 놀다온, 특이한 에피소드를 가득 짊어지고 돌아온 여행객에 불과했다. 여행의 마지막 길이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그간의 여행을 돌아보며 한 개인이 변화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기대하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롤모델도 없었고 이상향도 없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꿈과 목표는 것은 구체화라는 과정이 있어야 현실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리고 구체화를 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질문들로 나를 깨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전에 타인들로부터 받았다. '여행하고 오니 어때?'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순례길을 걷고 뭔가 달라졌어?' '그 길에서 얻은 건 뭐야?' 꽤나 심오한 질문까지.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귀국 후 피곤한 심신을 달래며 여독을 푸는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매일 못 먹었던 한식을 먹고 동네 친구와 포차에서 술 한 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부산에서의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퇴사 후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나 이직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건지 , 어떻게 먹고 살건지. 계획한 대로 여행도 했고 새로운 경험도 했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시나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당장 일을 시작할 생각은 없었기에 짐을 싸서 제주도로 내려갔다. 귀국한지 한 달만이었다. 


11월의 제주도는 겨울의 한복판이었다. 나는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한 민박집에서 지내게 됐다. 거기서 한 달을 보내고 두 달이 지나고 석 달 쯤 됐을 때 또 다시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들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청소를 하고 여행객을 맞이 할 수는 없다. 통장도 점점 비어갔다. 대문을 열면 훅 끼치는 찬 바람과 몇 발자국 걸어가면 보이는 수평선, 에메랄드 빛 바다로 둘러싼 비양도를 지척에 두고 나는 여기에 남아야 하나 부산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석 달을 협재에서 보내면서 제주의 자연과 친밀해졌고 특별한 것이 없어도 내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이 홀가분한 것들로도 삶이 채워질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있었다. 때로는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책을 읽다가 돌아오고 물 한 병만 지닌 채 오름에 가기도 하고 남쪽으로 가서 숲을 걷기도 하고 말이다. 


남들은 물 좋고 공기 좋은 제주에서 놀기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부분은 맞고 틀린 말이었다. 제주라고 다 좋은건 아닌데. 섬에 있어도 육지가 그립고 육지에 있어도 섬이 그리운건 여전했다. 여기에 있어도 저기가 그립고 저기에 있어도 여기가 그리울거면 나는 여기에서 저기를 그리워해야지. 그렇게 나는 제주에 남기로 했다. 나는 시내로 가서 다시 병원 문을 두들겼다.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뿐이라 어쩔 수 없었고 섬에는 간호사도 부족하댔다. 게다가 기숙사도 제공된다고 했으니 고민 할 이유가 없었다. 장장 4개월을 머물렀던 사장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는 제주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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