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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Oct 08. 2022

속도

오늘은 여기까지 걸을게요 

레온을 떠나 첫 번째로 스탑한 마을에서 요니를 만났다. bar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앉았는데 그가 나를 알아보았다. 에스테야 마을에서 본것 같긴 한데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같은 숙소에 있었던 기억은 더욱이 없었다. 기억력이 좋은 내가 이렇게 가물가물한 정도면 우린 거의 스쳐 지나간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그가 나를 똑똑히 기억하다니. 아마 요니는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중에 동양인은 나 하나였으니 요니가 나를 기억하는 게 더 쉬운일이지 않았을까. 


"너 나 기억해? "

"아마도...? 근데 왜 여기에 있어?" 


나는 부르고스에서 버스를 탔지만 요니도? 아니나다를까 요니도 버스를 탔다고 했다. 알고보니 같은 날에 버스를 탄 것 같은데 왜 보지 못 했을까. 난 요니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출발 멤버들 중 한 명을 만나서 내심 반가웠다. 요니도 오늘 걸으면서 마주친 사람들은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며 나를 꽤 반가워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를 시키더니 원샷을 하고 홀연히 가버렸다. 


"부엔까미노, 곧 봐 "


그런데 사장님이 내 옆으로 오더니 쟤 계산 안 했는데 하며 나를 쳐다보셨다. 네? 이미 조금 멀어진 요니의 뒷모습을 보며 주머니를 뒤지는 데 요니가 황급히 뛰어왔다. '정신이 없는 친구군' 해봐야 2유로도 안 하는 값이지만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도 배낭을 챙겨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장님이 내게 등산 스틱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아까 니 친구거야"


요니는 계산을 하러 오면서 등산 스틱을 두고 간 것이었다. 이런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 순례길이다. 요니는 스틱이 손에 없는 걸 언제쯤 눈치챌까? 나는 스틱을 짚으며 천천히 걸었다. 요니는 생각보다 금방 뒤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결코 짧은 거리도 아니었는데, 만약 나였다면 요니처럼 돌아왔을까? 고민할 것도 없이 '아니오'. 내가 스틱을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아 그렇겠지만 돌아가는 것은 왠지 시간 낭비라고 느껴진다. 사실 무엇을 두고 왔느냐에따라 달라지겠지. 지갑이나 휴대폰을 두고 왔다면 뛰어서라도 갔겠지. 결국은 그게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게 무엇이고,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비싼 물건이 아니라도 내게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다면 역시나 달려갔을 것이다.  














나는 요니와 함께 걷다가 각자의 속도가 달라 다시 헤어졌다. 나는 어떨 땐 쉬지 않고 몇 시간 걷기도 하고, bar가 나올 때마다 쉬기도 한다. 컨디션이 크게 좌우하겠지만 쉴 만한 공간이 편안해보이거나 풍경이 이쁘거나 bar의 인테리어가 이뻐 보일 때는 발걸음을 자주 멈춘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자주 멈춘다. 주로 휴대폰으로 찍고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로 찍고, 자리를 떠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필름카메라를 꺼낸다. 필름카메라로 찍을 때는 햇빛은 필수다. 살면서 많은 사진을 찍어왔다. 실패한 사진도 있고 자신있게 자랑할 수 있는 사진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보니 실패한 사진은 없고 그저 소리 없이 그때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필요 없는 사진이란 없으며 못 찍는 사진은 있어도 못 찍은 사진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걸으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훗날 사진첩을 넘겨보며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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