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취가 아이의 결핍이 되지 않기를

by 강은솔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를 몇 개월 만에 만났다. 우리는 여전히 어색함 없이 웃고 떠들었지만, 테이블 위 대화의 온도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연애나 맛집 이야기 대신 전세 대출, 육아휴직, 경력 단절 같은 서늘한 현실의 단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래서, 아이는 누가 키워?"라는 질문에 닿았다. 친구는 얕은 한숨을 쉬며 자기 오빠네 부부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조카가 태어났는데, 올케언니가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선 지금 반드시 복직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직장 여건상 딱 1년만 버티면 그 이후엔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부부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 '1년'을 위해, 아이를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께 순차적으로 맡기기로. 평일엔 떨어져 지내고 주말에만 아이를 보러 가는 생활을 선택한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그 선택이 맞다. 부모의 커리어가 단단해야 아이의 미래도 든든해지니까. 하지만 친구의 담담한 말투 뒤로 느껴지는 씁쓸함에, 듣는 내 마음도 덩달아 덜컹거렸다.


어른에게 1년은 눈 깜빡하면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갓 태어난 아기에게 1년은 우주가 만들어지는 시간일테니.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고, 처음으로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마침내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그 기적 같은 순간들. 그 모든 '처음'들이 포함된 시간이 바로 그 1년. 놓쳐버린 그 장면들이 부모의 마음에 빚처럼 남지는 않을까.


남의 이야기인데도 듣는 내내 안타까웠다. 그건 그 부부의 사정이 딱해서이기도 했지만, 곧 닥쳐올 내 삶의 예고편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도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커리어와 아이, 그 사이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나.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직장에서는 "아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라는 시선을 받고, 집에서는 아이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삶.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게 생기면, 나 역시 아이의 찬란한 순간들을 그저 전해 듣는 관객으로 남게 되지는 않을까. 둘 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욕심인 걸까. 결국 둘 다 놓쳐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슈퍼우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현실에 쫓기다 보면, 나 역시 아이에게 "잠깐만 기다려"라는 말을 수없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건 딱 하나다. 아이가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곁에 있어 줄 수 있기를.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 속에, 조금 서툰 모습으로라도 꼭 함께 서 있을 수 있기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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