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선택한 것

by 강은솔

전화 너머 들려오는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우연히 본 채용 공고 때문이었다. 스포츠 관련 공공기관. 스포츠를 전공했고, 여전히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지금도, 그쪽 세계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다시 소년이 되곤 했다.


문제는 지역이었다. 서울에 있던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이 그의 들뜬 목소리에 제동을 걸었다. “처우도 업무도 내가 바라던 건데… 거리가 너무 머네. 현실적으로 어렵겠지.” 말끝을 흐리는 그 목소리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아직 식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가 보이지 않는 가족을 등 뒤에 업은 가장처럼 느껴졌다. 혹시나 미래의 우리라는 존재가 짐이 되어, 그가 자신의 가능성을 미리 꺾어버리는 건 아닐까.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열정을 뒤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더 단호하게 그의 등을 떠밀었다. “하고 싶으면 지원해. 우리 아기도 없잖아. 결혼하고 주말 부부 하면 되지. 정 힘들면 내가 그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어.” 빈말이 아니었다. 현실이라는 벽 때문에 마음의 불씨를 서둘러 꺼버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먼 훗날, 팍팍한 현실에 지칠 때마다 ‘그때 해볼걸’이라며 삼킬 후회가 두려웠다. 내 강력한 권유에 그는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잠들기 전에도 그의 저울질은 계속되는 듯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그가 전해온 결론은 담담했다.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내가 괜찮다고, 주말 부부도 감수하겠다고 거듭 말했음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큰 변화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신혼을 꼭 붙어서 지내고 싶어. 우리가 세워둔 계획들도 있고, 훗날 태어날 아이 생각도 해야지. 그 모든 걸 뒤로하고 떠날 만큼, 그 일이 간절하지는 않았나 봐.”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가 현실에 굴복해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한다고 믿어 안타까워했지만, 그건 나의 오해였다. 그는 단순히 접은 게 아니었다. 과거에 꿈꿔왔던 일의 가치와, 우리가 함께 매일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으며 쌓아갈 시간의 가치를 비교해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스스로의 의지로 우리를 선택했다. 떠밀려서 남은 게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 남기로 결정한 마음이 고마웠다.


가끔은 가정을 꾸리는 일이 나의 자유를 갉아먹는 과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어쩌면 가족이 된다는 건, 내 세계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꿈을 기꺼이 유보할 만큼 소중한 존재가 생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삶의 밀도가 더 꽉 차오르는 과정일 것이다.


“그럼, 우리가 같이 사는 게 더 좋다는 거지?” 나의 물음에 “당연하지”라고 답하는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선택이 단순한 포기로 남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할 이 시간을 더 부지런히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기꺼이 선택한 이 우리라는 공간이, 그 어떤 꿈보다 근사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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