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같던 동생이, 방문을 걸어 잠글 때

by 강은솔

엄마의 부탁을 받고 주말에 본가로 내려갔다. 나와 무려 16살 차이가 나는 막둥이 동생을 돌봐주기 위해서였다. 내 기억 속 동생은 여전히 작고 말랑말랑한 존재다. 갓 태어났을 땐 고구마 한 덩이 같았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언니, 언니" 부르던 귀여운 아기였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마주한 동생은, 내 기억 속 그 아이가 아니다.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 훌쩍 자라버린 팔다리는 언제봐도 낯설다. 이제는 아기가 아니라 소녀다.


"왔어?"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시선은 스마트폰 액정에 고정되어 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대구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언니보다 유튜브 영상이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나는 짐을 풀기도 전에 섭섭함이 밀려왔지만, 애써 밝게 톤을 높였다.


"우리 오랜만에 영화 보러 갈까? 언니가 맛있는 것도 사줄게. 뭐 먹고 싶어?"

돌아온 대답은 짧고 건조했다. "아니, 귀찮아. 안 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이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하고 내려왔는데. 나는 무언가 더 챙겨주고 싶고, 먹이고 싶고, 살갑게 대화하고 싶은데, 동생에게 내 존재는 그저 잔소리하러 온 사람일 뿐이었다.


억울함이 폭발해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지 보러 서울에서 왔는데 인사도 제대로 안 해! 말 시키면 짜증만 내고!"내 하소연을 듣던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와 아빠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가 고생이 많다. 근데 그거 아나? 너도 그만할 때 딱 그랬다. 우리 눈엔 너네 다 똑같다, 똑같아."


"내가? 내가 언제 저랬는데?" 발끈해서 부정하고 싶었지만,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다. 잊고 있었던 기억의 파편들이 스쳐 지나갔다. 세상 모든 게 귀찮고, 부모님의 관심이 간섭처럼 느껴져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던 날들. 밥상머리에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의 사춘기.


갑자기 눈앞의 퉁명스러운 동생 뒤로, 그 시절 나를 참아냈을 부모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회사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 때, 반겨주는 딸이 아니라 틱틱대며 짜증만 내는 사춘기 딸을 마주해야만 했던 매일 저녁. 그 짜증을 사랑으로 덮어두고, 그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일. 그게 얼마나 거대한 인내심과 사랑을 요하는 일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최근 나는 결혼을 준비하며 줄곧 '아기'에 대한 환상만 품고 있었다.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는 천사, 내 품에 안겨 잠드는 사랑스러운 생명.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뚱한 표정의 6학년은 나에게 '현실 육아'의 매운맛을 예고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멀었다. 동생의 짜증 한 번에 "내가 널 보러 왔는데!" 하며 억울해하는 이 좁은 그릇으로, 과연 한 사람의 격렬한 사춘기를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을까.


엄마가 말했다. "그냥 놔둬라. 다 지나간다. 너도 그랬고, 쟤도 그런다."

부모님은 확실히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나는 아직,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짜증을 받아내야 하는 이 상황이 억울하기만 한 철없는 언니일 뿐이다. 언젠가 내 아이를 키우며 이 억울함을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솔직히 말하고 싶다.


아무리 사춘기라도, 서울에서 온 큰언니한테 그러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고.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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