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Easy To Find>, <C’mon C’mon>
힘든 2월이 곧 지나고 이제 3월이다. 새로움으로 여겨지는 달. 무언가가 시작되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이 여전하다는 걸 생각하는 달.
하지만 어째 내 몇 주 전 기대와는 다르다. 날이 풀려 따뜻해지면 내 몸도 풀리면서 불안함 같은 것도 조금 날아갈 줄 알았는데, 실제의 노력 없는 머릿속에서 만의 이 바람이 터무니없다는 걸 오늘 내내 느끼고 있다. 오히려 긴장해야 할 만한 일정이 정말 다가왔다는 것 때문에 다시 잠깐 추워지든 말든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다. 따뜻한 공기에도 아직 웅크린 몸을 펴지 못했고, 불안함도 여전, 아니 오히려 더 불어나는데.
자, 이럴 때면 어떤 영화가 필요한가.
어떤 영화의 연출가와 각본가의 시선으로 한번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좋아하는 영화는 많지만, 그 영화와 같은 시선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느낀다는 건 좀 더 특별하다. 그래서 손가락 몇 개 정도로 좁혀진다. 내 머릿속엔 그런 영화를 만든 사람이 몇 명 있고, 이들의 공통점은 작품에서 사람과 사물, 이 세상의 보편적인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스토리텔러들.
그중의 한 명이 ‘마이크 밀스’이다.
평소에는 그의 다른 영화를 더 자주 찾는데, 지금은 이 두 영화를 찾게 된다.
<I Am Easy To Find>(2019)(이하 <IAETF>)는 마이크 밀스가 밴드 ‘더 내셔널 (The National)’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마이크 밀스가 연출한 영상에 더 내셔널의 동명의 앨범이 합쳐진 단편 영화로,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겉모습의 변화 없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한 여자의 일생을 표현한다.
색감 없는 화면 속에서 담백하게 이어지는 하나의 삶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찡해지더니 눈물이 났다. 울면서도 ‘내가 지금 슬픈 건가?’ 또, ‘왜 눈물이 나지’ 싶었는데,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보며 이런 결론 비슷한 걸 냈던 게 생각난다. 슬픔보다는 애틋함에 더 가까웠으며, 눈물이 난 이유는 단지 그 때문일 거라고. 우리는 가끔 당연하지만 무언가 애틋한 것에 갑자기 눈물을 쏟는다.
어느 인물의 개인적인 인생 이야기지만 이 영화를 본 이들이 눈물 흘릴 만큼은 보편적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나도 다 안다’며 말할 순 없지만, 눈물 흘릴 만큼은 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그렇게 살다가, 늙어가다 죽는 삶 사이사이에는 어떤 크고 작은 일들과, 사람들과, 감정들이 있다는 것. 다른 건 다 달라도 이 개념은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같으니까. 너무나 보통의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가끔씩 별안간, 우리를 뭉클하게 하고, 혼자 뭉클해하면서 내가 왜 이러나 생각하고, ‘아, 이건 뭉클할만한 이야기라는 걸’ 또 깨닫는 그런 이야기.
이 단편 영화가 나오고 약 3년 뒤, 마이크 밀스는 장편 영화 <컴온 컴온> (C’mon C’mon, 2022)를 발표했다. 마찬가지로 흑백 영화이고, 더 내셔널의 데스너 형제가 음악 작업을 맡았다.
여러 주를 돌아다니며 청소년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조니’가 조카 ‘제시’와 보내게 된 며칠을 담은 담백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조니와 제시를 중심으로 연결된 동생, 엄마, 배우자, 연인, 동료 등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린 세대가 말하는 현 사회와 어른에 대한 진짜 말들이 담겨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IAETF>를 떠올렸고, 두 작품이 마치 자매처럼 이어져있다는 생각을 했다. 흑백 화면과 음악, 그리고 비슷한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이크 밀스의 작품들은 다 내가 느끼기에, 따뜻한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우리 보통의 삶을 담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이 단어가 떠오른다. ‘The Orphan’. 영화의 사운드트랙의 3번 트랙의 제목이며, 제시가 연기하는 것. 제시는 고아를 연기한다. 그가 하는 역할 놀이이다. 제시의 엄마이자 조니의 동생인 ‘비브’는 조니에게 이게 제시가 늘 하는 놀이임을 알려주고, 제시는 어떤 이유들 때문에 부모를 잃었다며 이 집에서 자고 가도 되냐고 묻고, 비브는 그러라고 말한다. 당연히 제시는 조니와도 이 놀이를 한다.
제시가 부모를 잃은 아이로 등장해서 잘만한 공간과 보살핌을 요청하는 이유는 뭘까. 불안정한 아빠로 인한 두려움, 걱정, 불안일 수도 있을 것이고, 관심을 바라는 것일 수도, 아니면 그냥 재미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장면과 이 단어를 생각하고 있자니, 이 두 작품이 유난히 닮아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지점이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무언가를 잃어도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다들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IAETF>에서 본 그 여자의 일생에도 상실과 소멸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알고 있다. 우리의 일생에 수많은 상실과 소멸이 있다는 걸. 그리고 다른 것들도.
마이크 밀스가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고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하는 세상, 사람, 사물은 선하다. 선하다는 건 복잡함과 불안함과 혼란함과는 상관이 없다. 그래서 복잡하고 불안하고 혼란해도 온기가 느껴진다. 무언가를 잃고 나서, 다시 온기를 되찾게 도와줄 사람과 공간의 분위기와 닮았다.
그는 계속 자전적인 이야기를 해왔다. 위의 두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 특히 <비기너스>와 <우리의 20세기>에서는 각각 어렸을 때부터 평범하지는 않았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리며 삶과 죽음, 성장, 사랑 등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두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이면 우리의 20세기를, 조금 서늘해지면 비기너스를 본다.
그리고 지금, 처음에 말했듯이 내가 어떻든 시간은 아랑곳 않고 흘러 어김없이 새로운 봄에 닿았다. 그런데 내 기대와는 다르다. 날씨가 아니라 내가 말이다. 나는 아직 추운 겨울에 잡혀있는 것처럼 굴고 있고, 그걸 이제 (제발!) 그만해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들을 오랜만에 틀어본다.
담백하지만 진한 그의 영화들처럼, 나도 여러분도 온기를 되찾을 힘을 낼 수 있는 3월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