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가토의 자유

(25.03.24)

by 강가든


언니가 최근에 독립을 해서 나갔다. 그리 먼 곳은 아니긴 하지만 계속 한집에서 같이 살던 가족 한 명이 이 집에서 빠져나가고 나니 조금 다르긴 하다.

뭐가 확 다르진 않다. 다만 그냥 소소하게, 언니가 퇴근을 하고 밥을 먹을 때 그 주위에서 (그냥) 어슬렁대거나, 그러면서 둘이 실없이 낄낄대거나, 아주 가끔 늦은 저녁에 (거의 뭐, 밤에) 같이 엄마 몰래 (...)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 할 일이 이제 없을 것일 뿐이다. 어쨌든 이 소소한 아쉬움들은 정말 소소해서, 그냥 그럴 시기가 이렇게 지나곤 하는 거라는 걸 생각하며 아쉬워할 정도로만 아쉽다.


그러다가, 저번에 여느 때처럼 혼자 카페에 갔을 때였다.

보통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거나, 커피가 별로인 날은 티를 마신다. 그리고 언니와 같이 왔으면 거기에 케이크 같은 디저트가 추가된다. 우리의 목적은 커피에 디저트까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포가토. 가끔 언니는 어떤 카페에 가면 아포가토를 시킬 때도 있다. 좀 오버했던 날엔 각자의 커피 한 잔씩과 케이크 한 조각과 거기에 아포가토 하나를 시킨 적도 있고, 각자 아포가토 하나씩을 시킨 적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언니랑 있을 때만 그 카페에서 아포가토를 먹어봤다. 혼자 있을 때는 결코 아포가토를 주문해 본 적이 없다. 친구랑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꼭 언니랑 있을 때만! 아포가토를 먹었다. 언니가 시킨 아포가토를 몇 입 먹거나, 언니가 사준 내 몫의 아포가토를 먹거나.


그래서 그 카페의 아포가토라고 하면 왠지 언니랑 있을 때 먹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저번에 여느 때처럼 혼자 카페에 간 저 날, 아포가토를 시키면서 생각했다. 오우, 나 혼자 아포가토를?

생각해 보면 내가 언니 없이 혼자 아포가토를 먹는다는 게 어머 나 혼자 왜 아포가토를? 이라며 (속으로) 호들갑 떨 만큼 대단히 놀랍거나 아쉬울 건 아니다. 둘이 함께 카페를 갈 일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고, 우리가 아포가토를 먹는 그 카페는 물론이고 아포가토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카페에서든 둘이 아포가토를 먹을 일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저 날은 뭔가 조금 그랬다. 오우, 나 혼자 아포가토를?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잔에 든 에스프레소를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붓는데, 내 앞에 언니가 없는 게 좀 이상하긴 했던 것이다.

뭔가 방금 이 몸짓, 그러니까 그 작은 잔을 (나의 경우에는) 엄지손가락과 중지손가락으로 들고 초콜릿 파우더와 시럽이 뿌려진 아이스크림이 있는 차가운 잔에 에스프레소를 붓는 그 간단하고 짧은 그 몸짓을 나 혼자 말고, 언니랑 같이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스푼으로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를 같이 떠서 먹는 것까지. 혼자 하기엔 좀 과한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특히 느껴졌던 허전함의 정점은, 언니의 ‘에스프레소가 부족하지 않냐’는 말로 찍었다.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목소리, ‘에스프레소가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어.’ 내가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언니가 아포가토를 시키면 (언니가 사준) 내 아메리카노 몇 스푼을 그 에스프레소가 모자란 언니의 아포가토에 줄텐데.


사실 이게 과하다기보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더 과한 것 같긴 하다. 좀, 오버하나 싶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같이 아포가토를 먹을 일은 당연히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내가 혼자 카페를 갈 날도 많을 테니까. 예전에도 아주아주 많았던 일이며 지금도 그렇다.

다만 그동안 언니가 독립하기 전에는 나 혼자 카페를 갈 때마다 아포가토를 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서 그렇다.

왜 아포가토 먹을 생각을 안 했지?


그래서 생각해 보건대 그건 아마도 그동안 나에게 아포가토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니와 있을 때만 먹는 특별한 것이었으며, 그 특별함을 딱히 나 혼자 있을 때 먹음으로써 희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했다기보다는, 지금 내가 왜 이리 오버하나 싶어서 생각해 보니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아포가토라는 것에 언니와 함께 있을 때 먹는 것이라는 라벨이 나도 모르게 붙어있던 걸, 뒤늦게 발견한 상황인 것이다, 그 라벨은 내가 붙인 거고.


그렇게 본인도 모르게 특별함을 부여받았던 아포가토는 이제 저 날부로 라벨을 뗐다. 이제 곧 나 혼자 아포가토를 먹을 때 이런 아쉬움이 따라오지 않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어떤 변화에는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다. 그리고 이 아포가토에 대한 아쉬움 또한 언니가 일상에서 내 시야에 있는 순간이 아주 조금이지만 적어지는, 이 나이에는 자연스러운 것인 시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며 아쉬워할 정도로만 아쉬운 수준이니 말이다.

그리고 별 것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아쉬울 것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계속 말하게 되는데, 우리에겐 둘이 함께 아포가토를 먹을 날이 아주 많을 테니 말이다. 누구 하나가 갑자기 아포가토를 굉장히 싫어하게 되지 않는 이상..


게다가 이제 아포가토에 자유를 주게 된 셈이다. 언제 붙었는지도 모를 그 라벨을 떼어 준 것이다.

아니, 자유가 나에게 주어진 건가? 당신, 이제 언니 없이도 아포가토를 그냥 먹어라. 대체 왜 그동안 혼자 있을 때 아포가토를 먹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겐가.


아무래도 아직 언니 추억 라벨이 붙었던 자국 같은 게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어차피 언젠가, 마치 내가 이 라벨의 존재를 문득 깨달은 것처럼, 이제 이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는 걸 문득 깨달은 순간, 이제는 아쉬움을 느낄 시기가 지났다는 것을 아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냥 그럴 시기가 이렇게 지나곤 하는 거라는 걸 생각하며 약간 아쉬워할 정도로만 아쉬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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