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나요

동네 도서관 이야기 2

by 강가든


우리 동네 도서관이 몇 달 전부터 휴관 상태이다. 건물 전체를 공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작은 공사를 몇 번 하더니, 슬슬 여름이 가고 있던 9월 초쯤, 내년 6월까지 휴관을 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그 도서관을 다닌 이후로 이렇게 오래 문을 닫는 건 처음이었다. 오래되긴 했지. 그 안내문을 본 날, 괜히 조금 쫓기는 마음으로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을 골라 들며 생각했다.


다행히 대안은 있었다. 전에도 가끔 가긴 했지만, 조금 더 멀어서 자주 가진 않았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마음이 내키든 내키지 않든 상관없이 그냥 일단 가보는 느낌으로 갔다면, 이 이웃 동네 도서관은 가야지 마음을 먹고 가야 하는 정도였달까. 하지만 이제 몇 달 동안은 이 도서관만 가야 하고, 그러고 있다 보니 그곳까지 걸어가는 게 익숙해졌고, 걸어가는 속도도 빨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네 배 정도는 더 걸어야 한다는 것을 빼놓고는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상황이다. 휴관한 도서관보다 훨씬 크고 최근에 지어져서 더 쾌적한 곳이니 말이다. 올 때마다 이 도서관 참 좋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운동되고 좋지 뭐. 몇 없는 내 특기 중 하나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걷기이니.


날씨가 좋은 날이면 더 좋다. 여기는 날씨가 좋은 날 그 매력이 더 살아난다. 이 도서관이 있는 동네가 나에게 그런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 이웃 동네는 예전에 내 친구 하나가 살았던 동네이고, 그래서 그 친구와 그 동네의 카페를 갈 때 두세 번인가 가봤고, 그때부터도 무언가 평화롭고 깔끔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땐 이 도서관이 없었고, 이 동네를 내가 지금처럼 자주 가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꼭 가서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다. 그쪽 동네의 계절 변화가 눈에 보일 만큼. 어쨌든, 내가 그 이웃 동네를 보는 시선 덕분에 이 도서관도 덩달아 그런 이미지를 얻었다. 원래도 크고 쾌적한 건물에, 이 동네의 평화롭고 깔끔한 느낌이 더해진 느낌. 그리고, 동네 전체를 비추는 햇빛과 참 잘 어울리는 장소. 아, 내가 말한 좋은 날씨란 햇빛이 따스하고 밝은 날씨라는 걸 말해야겠구나.


이 도서관은 책도 많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책장 곳곳에 빈 공간이 많았고, 내 느낌으로는 책 보다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당연히 책이 훨씬 더 많았겠지. 하지만, 앉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일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고, 나처럼 아직 군데군데가 비어있는 책장을 걸으며 책을 고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도서관이 좋은 만큼 사람들도 이 장소를 알아서 잘 찾아오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비록 오래도록 넓은 도서관 안을 어슬렁거리며 책을 구경하기를 한 시간은 훌쩍 넘기도록 내가 앉을자리를 찾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이곳을 이토록 많이 드나든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러니까, 다 좋다. 우리 동네 도서관이 오래 휴관하는 바람에 가야 하는 이웃 동네 도서관이 이렇게 훌륭하다니. 겨울이면 더 게을러지는 나를 꽤 많이 걷게도 해주고, 빽빽하게 앉아 책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도 하게 해 주고, 심지어 건물까지 멋있으니, 이 도시에 사는 게 더 만족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음. 지금 여기까지의 글에서 약간의 삐딱함이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방금 좀 가벼운 문제 하나가 생겼기 때문이다. 휴관한 도서관을 가지 못하게 된 지 약 3개월 정도가 된 지금, 갑자기 그 도서관이 너무 가고 싶다.


지난 몇 달 동안은 우리 동네 도서관이 이렇게까지 그립지는 않았다. 말했듯이, 더 멀기 때문에 귀찮은 날에는 더 귀찮을 뿐이지 그것 말고는 다른 도서관을 그리워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하지만, ‘그리운 이유’라니. 한 번 생각해 봤다. 무언가가 그리울 이유는 그렇게 표면적인 단순한 이유들 말고도 더 존재감이 큰 다른 이유가 있을 때가 많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내 머릿속에 있는 그 도서관의 첫 기억부터, 인생 책을 발견했던 날들. 그리고, 내가 그 도서관에서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경험했던가, 그리고 그 영향인지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기 시작했던가 하는 것들. 수시로 그 도서관에 가서 그 공간이 주는 정신적 안정감을 최대한 많이 흡수하려고 했던 날들. 이 정도면 너무나 존재감이 큰 이유들이 아닌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년 전의 어느 날,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등 뻔하지만 꼭 해야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우리 동네 도서관을 떠올린 적이 있다. 정확하게는, 생각보다 그 도서관과 내가 끈끈한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으며 존재감 큰 저 이유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그런 장소 하나는 둔 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주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했고, 불안했고, 내가 불안하면 하는 것들 중 건강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사실 지금도 내 상황은 달라진 게 없지만 어쩌면 그래서인지 더, 잠시 문을 닫았다고 그리워할 만한 장소를 만든 건 잘한 짓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어떤 장소가 그러한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장소가 잠시 쉬는 게 아니라 영영 사라진다면, 또는 내가 그 장소를 떠나야 한다면, 그런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다들 그런 그리움은, 어떻게 다루나요? 새로운 어딘가를 찾나요, 아니면 생각날 때마다 그냥 그리워하고 마나요. 하긴, 이런 거라고 완벽한 방법이 있을까 싶긴 하다. 그러면 이 질문은 어떨까. 불안할 때면 어떤 장소를 가나요? 그런 장소가 당신에게도 있나요.


어쨌든, 우리 동네 도서관을 향한 나의 이 그리움의 이유는 전혀 없기는커녕 이렇게 커다랗게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멋진 건물과 그 주변을 넓게 비추는 햇빛이 잘 어울리는 이웃 동네 도서관보다도, 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익숙한 공기를 공유하는 그 크지 않게 수수한 건물을 소소한 한 줄기 햇빛이 비치는 장면이 잘 어울리는 우리 동네 도서관이 별안간 너무 가고 싶어질 만큼. 그래도 다행히 이 그리움은 때가 되면 해소될 걸 아는, 그런 종류의 그리움이다. 영영 사라지는 것도, 내가 떠나는 것도 아직은 아니니까. 그래서 완벽한 방법이라고 할 순 없지만, 다시 열릴 거라고 약속된 날을 기다리며 이런 글을 쓰는 게 그때까지 그리움을 달랠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나저나 방금 머릿속으로 저 햇빛 드는 장면을 그리던 내 안의 내가 콧방귀를 뀌며 무심한 척 말했다. 아니, 막상 그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면 감흥이 없어질 거면서. 그 말에 잠깐 진심으로 생각해 봤는데, 몇 초 후에 또 다른 내 안의 내가 마찬가지로 콧방귀를 뀌며 자신 있게 말했다. 아니?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날마다 갈 건데. 너도 알잖아, 참나.


진짜, 기대하길. 벌써부터 내가 사랑하는 그 장소, 우리 동네 도서관에 다시 갈 수 있게 될 여름이 기다려진다. 지금 이 별안간의 그리움이 완전히 해소될 여름이 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