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공존을 찾는다면

by 강고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본격적인 첫날 아침. 우리는 숙소 건너편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라테 한 잔, 초코빵 한 개를 먹으며 천천히 잠을 깼다. 그리고 찾아간 첫 여행지는 힌두교 ‘스리 마하마리암만 사원(Sri Mahamariamman Temple)’. 18세기말 지어진 스리 마하마리암만 사원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교 사원이라 한다. 원래 어떤 가족의 사원으로 세워졌는데 1920년대 말 인도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대중 사원으로 개장, 확장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힌두교 신자들의 대표적인 사원이라고.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돌아서자마자 이미 외관에 압도당했다. 힌두교 신상들로 그야말로 꽉 찬, 높은 입구 정면 탑. 너무 화려해서 한참을 바깥에 머물며 보고 또 봤다. 이렇게 까지 정성을 바치는 종교라니. 화려한 건 종교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이건 힘의 과시가 아니라 정성이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입구 바로 옆에 0.2링깃(한화 70원 정도)을 내면 신발을 보관해 주는 곳이 있어 마침 갖고 있던 잔돈을 내고 맡겼다.

나름 엄숙함과 기대감을 갖고 들어섰는데 크고 쨍한 음악 소리가 앞서 귀를 강하게 때렸다. 두 명의 연주자가 바닥에 앉아, 한 사람은 긴 나팔처럼 생긴 악기를 힘껏 불어댔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리나라 북 모양의 악기를 한 손으로 치며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음악만으로도 이미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때마침 종교의식이 막 시작된 시간에 온 것. 참여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워 살짝 거리를 둔 채 의식을 지켜봤다. 작은 신전 안에 따로 모셔져 있는, 아마도 힌두교 신으로 보이는 조각상 위에 물과 우유처럼 보이는 흰 액체, 그리고 뭔지 모를 노란 액체를 한 사람은 통을 건네고 한 사람을 그걸 받아 신상 위로 계속 부어댔다. 그렇게 의식이 끝나면 양쪽에 서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이마에 액체를 찍어주었다.


나름 화려했던 의식을 본 후엔 사원 주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뜨거운 지면의 열이 발에 그대로 닿아 몸으로 전해졌다. 수행의 시간이었나.

사원 안팎으로 가득했던 알록달록한 장식들은 특유의 공간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중심 사원 외부엔 작은 미니 사원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오가며 혼자 기도를 하는 공간 같았다. 세상을 잠시 등진 채 비는 소원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은 몸과 마음의 건강이겠지. 이런저런 모습에 종교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며 사원을 나섰다.


그리고, 도보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중국 종교 신전이 보였다. 압도적 외관을 자랑하는 힌두교 사원보다는 한결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지붕 위에 펼쳐지는 대칭 조각상들과 붉은색으로만 가득 칠해진 입구 벽면은 꽤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진 촬영이 불가능해 왠지 더 엄숙한 마음으로 들어섰다. 넓고 고요한 공간에 친숙한 향냄새가 짙고 넓게 퍼졌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정성스레 기도하는 모습에 오래 눈길이 닿았다.

속세의 건물들 사이 묵직하게 자리한 사원


두 번째 종교 공간을 나와 다시 10분 정도 걸으면 또 다른 사원이 또 다른 형태로 서있다. 바로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마지드 자멕 사원(Masjid Jamek Sultan Abdul Samad).

쿠알라룸푸르의 클랑강(Klang)과 곰박강(Gombak)이 만나는 지점인 일명 생명의 강(River of Life)에 위치해 있는데, 높고 각진 빌딩들 가운데 낮고 둥근 사원이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인상적인 그림을 자아냈다.

참고로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라는 도시 이름이 말레이시아어로 '흙탕물이 합류하는 곳'을 의미하는데 바로 이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한다. 알고 나니 왠지 쿠알라룸푸르의 정수를 다녀온 느낌도 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계는 대체로 이슬람, 중국계는 불교, 기독교, 도교, 그리고 인도계는 힌두교를 믿는다고 한다
이번엔 이슬람 사원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공간 내부 역시 보고싶다


말레이시아가 다민족 사회라는 것을 도시 내 몇 분 안 된 거리에 있는 종교 공간들을 통해 다시 한번 체감했다. 오랜 건물과 신식 빌딩숲 사이에서 오랫동안 남아 버틴 각각의 사원들은 그저 자리를 오래 차지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각자 종교에 대한 강한 믿음도 당연하겠지만, 그만큼 다른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 역시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객으로서 언뜻 보고 돌아가는 내가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서로의 문화를 존중한다고 이상적으로 말하고 마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겠지만, 다인종이 계속 더불어 살고 있다는 건 그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문화와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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