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the coin a god or alive?
한 세계가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면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하나의 언어는 작게는 공동체, 크게는 문화의 형성을 이룬다. 첫번째 예로 영어란 언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영어가 통하니 지역을 알아가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 과정에서 문화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영어를 사용하고, 통하는 지역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쓰는 국내의 여러 공간에서도 영어가 통용 언어가 되기도 한다. 교육과 비즈니스의 장이 대표적이다. 영어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더 세계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언어가 있는데 바로 돈이다. 기호로서의 언어다. 영어는 이를 배우고 습득해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사용가능하다면 돈은 다르다. 돈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없다. 돈의 어두운 측면 뿐만 아니라 돈이 해내는 밝은 면 모두를 포함해서 생각하면 돈이 물신주의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계를 살고 있다.
혹시 돈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의미”가 머리 속에 떠오르는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그리고 전하고는 싶지만 돈으로는 전할 수 없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머리 속에 몇가지 떠 오를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돈으로 하는 것이 합법 인지 불법인지 규정하는 법적 제한이 없다고 가정하고 돈으로 할 수 없는 것과 돈으로 전달할 수 없는 의미를 떠 올려보자. 냉정해지면, 예를 찾기 힘들어진다. 가장 아름다운 기부도 결국 돈을 통해 기획되고 성사되는 것을 보면 예를 찾기 어렵다.
영어 사용하고 돈 쓰면 의사가 통하고 생활이 가능하고 대부분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글로벌 세계가 분명하다. 심지어 자신들의 언어와 지역화폐로 언어와 기호의 다양화를 살린 지역공동체 조차도 영어와 돈이 지배하는 세계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문화와 경제공동체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비영어권 지역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환전 가능한 지역화폐를 쓰면서 공동체 정신을 살린다고 노력하는 대부분 공동체에서 실제 일어나는 해프닝이지 않은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따져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해결의 열쇠는 지각(to perceive) 단계까지 가야 발견할 수 있다. 지각은 감각을 기반으로 한다. 감각이 없다면 지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에 대한 질문을 감각 단계까지 당겨 내리고 그 해답 역시 감각 수준에서 얻어야 한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져, 즉, 감각한 후에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길 때 돈으로 바로 행동으로 옮겨 가지려고 한다면 사회는 도덕과 법이 필요하게 된다. 가지고 싶은 것을 본능대로 마음껏 가질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이익이 한 쪽으로만 쏠린다. 피해를 막고 혜택이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도덕과 법이 작동한다. 그런데 도덕과 법이 대상을 삼아 조절해야 하는 돈이 역으로 도덕과 법을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는 점이 한계를 드러낸다. 그런데 감각과 돈 사이에 실은 다른 단계가 사람에게, 그리고, 많은 생명체에게 있으니 그것이 1단계 감각인 오감을 넘어선 2단계 감각이다. 예를 들면 균형감각 같은 것이다. 오감과 마찬가지로 균형을 감각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있다. 눈, 귀, 코, 혀, 피부와 같이 감각기관이 놓인 위치가 정확하게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분포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져서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타인과 다른 생명과 생태 전체를 고려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감각은 인간의 언어 이전에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는 언어, 기호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꼼꼼히 따져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런 연유로 도덕, 법으로 만드는 것이 원천적으로 힘들다. 1단계 오감이란 감각 이후에 균형감각 외에도 평형감각, 속도감각 등의 2단계 감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제 처음 한 질문으로 돌아가 다르게 표현해 보자. 모든 사이즈에 딱 들어맞는 언어와 기호인 영어와 돈 속에 균형감각, 평형감각, 속도감각이 담길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풀어보면, 영어와 돈은 기호란 수단일 뿐이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따로” 도덕과 법을 갖고 균형, 평형, 속도 등을 맞춰야 하는지 또는 영어와 돈의 사회내 쓰임 속에 인위적으로 추가되는 도덕과 법 없이도 마치 생명체처럼 균형, 평형, 속도를 맞추면서 자기 조절이 가능한지 묻는 것이다. 전자를 우리는 물신주의, 후자를 기호 생명론이라 할 수 있겠다. 하찮은 것 처럼 치부하다가 결국 돈을 숭배하는 사람인지 일상에서 호흡하는 생명의 공기처럼 여기는 사람인지 묻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솔직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