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기호만 주어지면 가능한 역할 드라마

드립커피 풍미의 비결

by 강하단

매거진 공통적용 “기호”의 정의: 기호sign란 자신이 의미를 전달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도구인데, 아이콘, 인덱스, 상징으로 나뉜다. 특별한 설명없이 딱 보면 알수 있는 것이 아이콘 기호인데 나무가 여러개 그려져 있으면 숲이라고 아는 식이다. 주식 사이트의 화살표와 숫자는 인덱스 기호인데 주식상황을 화살표와 숫자만으로도 물리적 연결을 통해 알 수 있다. 상징기호는 약속한 내용을 설명듣고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언어가 대표적인 예다.


청와대에 있다고 사칭하면서 뒷일을 봐주는, 영화 기생충에서 같이 서울대학 학생재학증명서를 조작해서 과외를 하는 사기를 치는 일이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어찌보면 신기하다. 절대 속지 않을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일이 되면 사기꾼을 판별해 내기 쉽지 않다. 이 말은 곧 사기꾼도 진짜 못지 않게 능력을 발휘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겉모습으로는 구별이 잘 안되는데 기호 분류로 얘기하면 이들을 아이콘으로는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상징으로 무장한 존재이다. 가짜가 진짜를 흉내낼 수 있다는 것은 진짜와 가짜의 실력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첫번째 예는 권력, 두번째는 전문화 사회의 자격증의 대표적 예이다. 이런 범죄를 접하면 모두에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아이러니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자격증와 계급장 떼면 실제 실력을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은 모두가 그 정도의 능력 쯤은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상징이 전문가 사회에서는 많은 일을 한다. 사원증, 자격증은 회사의 일원이고 특정한 일을 할 수 있음을 법적으로 증명해주므로 기호이다. 기호 중에서도 자격과 일을 약속했기에 상징기호이다. 상징기호의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 교환의 수단으로 약속한 돈을 들 수 있었다. 실제로는 없어도 돈 있는 척하면 구별할 길이 없다. 이 말은 누구에게나 돈만 주면 돈이 할 수 있는 일은 왠만큼 해낼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관련 사기범죄가 생기면 상징기호를 더 철저하게 관리하는 법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대처방향이다. 법을 통해 울타리를 치고 내부로 들어온 동료를 보호한다.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일정 시험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울타리 입구까지 이어지는 긴 시험구간이 마련되어 갈 수록 힘들어 진다. 자격증까지의 길이 멀고 험하다는 것은 어쩌면 울타리 속 사람들이 자격증 없이는 별 볼일 없을 수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허울뿐인 상징이라면 누구나 그 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해 주면 어떨까? 그러면 각자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나름대로 찾을것 아니겠는가. 상징기호의 극은 권력과 돈이므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대안권력과 대안 화폐를 만들어 각자의 역할을 하게 길을 열어 주도록 제안한다. 기득권자들이 가진 권력과 돈을 나누길 기다리지 말고 그들이 지키려는 상징기호는 그냥 그곳에 그들과 함께 놔두고, 한 곳으로 집중되어 고이지 않는 권력과 돈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대중은 만들어진 새로운 상징으로 소통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사회의 성장은 아니고, 문화자체의 성장도 아닌 상징기호의 성장이라 상징기호가 만드는 문화의 성장이기도 하다. 이제 철옹성 권력과 돈이 다르게 성장할 차례다.


커피원두를 갈아 필터에 넣고 물을 조금씩 부으면 처음에는 물이 필터 아래로 내려 오질 않는다. 원두 가루에 부은 물이 스며들면서 젖어가는 것이다. 조금 더 부어도 여전히 아래로 나오질 않는다. 조금씩 하지만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 검은 커피가 아래로 흘러나온다. 커피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을 “임계점”이라고 한다. 드립커피를 직접 내려 맛을 본 사람이라면 안다. 처음부터 물을 한꺼번에 많이 부으면 임계점까지 갈 것없이 바로 물이 아래로 나온다. 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물을 부어 임계점을 거친 드립커피보다 맛과 풍미가 훨씬 덜하다. 원두 알갱이가 갈아져 생긴 무수한 가루를 소통하는 대중에 비유할 수 있다. 대중은 조금씩 들어오는 물을 받아 스며들듯 바로 옆 가루 동료와 나누고 또 나누어 제대로된 드립커피를 만든다. 대중도 소통을 아주 천천히 사회를 변화시킨다. 특출하게 튀는 역할은 없지만 모두가 나름의 역할을 한 결과다. 드립커피 맛이 성장하려면 상층, 중간층, 아래층 할것 없이 모두가 자신의 몸으로 풍미를 만들어 내야 한다. 조금씩 들어오는 물이 퍼져 드립커피를 만들지 못하는 시간에도 조바심 내어 물이 바로 통과하게 해서는 안된다. “임계점 한계”를 견뎌내면서 기다려야 한다. 서로를 믿고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임계점은 금방 온다. 드립커피 드라마는 그렇게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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