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자아를 분리하고 다시 합치는 마법을 부린다
부처가 연꽃을 들자 제자 중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미소띠었다. 두 사람에게 연꽃은 의미를 전달한 방편에 불과하다. 즉, 기호 역할을 한 것이다. 의미를 전달받은 마하가섭은 부처의 뜻을 알았기에 깨달음을 갖게 되어 지식 또는 상황에 대처하는 행동으로 구체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연꽃이란 기호를 통해 모호하기만 했던 의미는 마하가섭을 통해 구체화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도 마찬가지다. 해리포터의 마음 속에만 있어 타인은 알 수 없는 의미가 지팡이를 통해 구체적인 행동과 결과로 변한다. 한 철학자가 있어 사람들에게 마음에 가진 바램을 신성한 돌에 기도하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기적과 같이 소원이 이뤄지면 철학자의 돌은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 어느날 철학자의 돌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돌의 능력을 믿었기에 돌은 사람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 주게 되었다. 철학자의 돌은 다름아닌 돈이라는 존재이다. 하지만 돈이란 존재의 본질은 이제 사라지고 소원을 들어주는 환상의 믿음만 남았다. 본질이 무색해져 버렸다. 존재의 본질은 철학자가 가져온 것인데 오직 변질된 믿음, 맹신만 남게 되었다. 철학자의 돌은 깨져 가루가 되고 부처의 연꽃은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돈은 깨지지도 시들지도 않는 금강불괴와 같다.
오죽했으면 철학자 니체는 시대의 금강불괴를 깨기 위해 망치를 든 철학자를 자처했겠는가. 애초 존재가 생겨날 때의 본질은 지워지고 잊혀져 본질없는 기능 작동만 남아 있는 사회 모든 규범을 깨고자한 망치든 철학자였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환영과 수수께끼” 챕터의 중력은 물리학적으로는 빛까지 흡수하는 블랙홀의 강력한 힘을 말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모든 욕망을 한꺼번에 빨아들이는 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돈의 예를 살펴보면 니체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돈을 처음 만든 사람은 철학자였음이 분명하다. 돈이란 존재의 본질을 그렇게 멋지게 만들었다면 신분과 직업이 무엇이든 철학자라 불려질만 하다. 돈의 본질은 물건을 교환하기 위한 도구이다. 지금 바로 필요 없지만 몇 일 후 꼭 필요할 것 같은데 그때는 그 물건이 없으면 어떻하냐는 걱정과 불안을 일식시켜주는 것이 돈이란 존재의 본질이다. 자신의 재능으로 만든 물건이 타인의 재능으로 만들어진 물건과 교환되게 도와주는 도구가 돈인 것이다. 즉, 돈은 한 사람의 재능이 타인의 재능과 교환되게 도와준다. 이렇듯 돈은 공동체의 필수조건이었다. 돈으로 재능과 재능이 연결된다. 돈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거라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철학자는 돈에 신성한 기운을 불어넣어 마법사의 지팡이, 철학자의 신성한 돌이라고 설득했다. 지팡이의 마법과 돌의 신앙이 통하기 시작하자 어김없이 권력이 이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돈을 가짐으로써 마법과 신앙이 만든 권력에 다가가려 했다. 돈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면서 재능과 재능, 재능이 만든 물건을 연결해 주던 돈은 이제 한 사람이 가진 능력과는 관계없이 물건과 물건을 교환할 수 있게 했다.
자신의 재능이 만든 물건과 서비스는 자아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소중한 재산이다. 재산은 분명 자신과는 다른 대상이지만 자아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재능 물물교환은 자아를 교환한 것이나 진배없으며 이를 돈이 도와준다. 자아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돈은 마법 지팡이, 철학자의 돈이 틀림없다. 그런데 늘 그렇듯 부작용이 발생한다. 돈은 마법 지팡이를 마구 휘둘러 자아가 아닌 물건까지도 마구잡이로 구매할 수 있도록 작동했다. 이제 자신의 자아인 물건이 누구에게 가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돈만 있으면 자신의 자아 없이도 얼마든지 타인의 자아 재능 사물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은 이제 자아간의 소통으로서의 교환이 아니라 자아와는 별개가 된 물건을 구매하는 도구로 전락 또는 관점에 따라서는 승격하게 되었다. 돈이 만든 시장이란 세계에서는 물건은 어느새 자아를 잃어버리고 생산한 사람을 외계의 존재로 바꿔 버렸다. 소중한 재능은 자아가 더 이상 아니다. 돈이 그렇게 만들었다.
돈의 마법이 외계 존재들간 소통하는 복잡계 사회를 완성한듯 보인다. 다만 자아를 잃어버린 영혼의 존재들이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니체가 살아있다면 그의 철학의 망치로 돈을 깨 부수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돈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이제 힘들다. 부처님의 연꽃이 아무리 만발해도 어려울 것이다. 자본이란 돈이 준 자유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족쇄를 거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다. 사람들이 자아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자유로운 구매를 할 수 있도록 돈이 지금과 같은 역할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면 될 일이다. 아무리 많은 구매를 하더라도 자신이 타인의 재능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돈을 리모델링하면 된다. 한마디로 확언하면 “가능하다”.
모든 사물, 물건, 서비스가 토큰화되고 생태화폐가 연결해 주는 세상을 사이보그 띵스 매거진에서 언급했는데 토큰과 생태화폐가 자아를 잃지 않게 만들 돈의 존재이다. 부처의 연꽃은 부처님의 의미가 마하가섭에게만 전달된듯 보이지만 마하가섭과 제자들을 거쳐 온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전달되어 다시 부처님께 선물로 돌아왔다. 돈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 존재와 소유를 구속하지 않으면서 권력의 도움없이도 가능하다는 가설은 디지털시대 많은 기술들이 증명하고 있다. 이제껏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생명체 자아들을 연결해 주는 돈, 토큰과 생태화폐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가까운 미래 그 실체가 구체화될 전망이다. 사실 많은 부분 이미 우리 곁에 있지만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안경이 얼룩져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 안경을 닦으면 지금이라도 환희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