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경제를 주장한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교수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은 “오직 자신만 믿을 수 있다”의 다른 표현이다. 누굴 믿어서 될 일은 사실 없고 자기의 힘으로 이뤄내야만 오롯이 자기 것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일상으로 들어가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만큼 신뢰하기 힘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회 관습, 눈앞의 이익에 쉽게 무너지는 자신을 너무나 자주 발견한다. 자신의 습관에 거슬러 무언가 해내려면 의례행사와 같은 결심과 절차가 필요하고 자신을 달래고 달래야 하며 한술 더 떠 이뤄 냈을 때는 소중한 자신에게 큰 보상을 해 줘야 겨우 움직일 뿐이다. 충분한 보상이 없을 때는 쉽게 낙담하여 우울해 지고, “역시 난 안돼”와 같은 자조에 빠지니 자신만큼 다루기 힘든 존재도 없다.
이를 잘 알면서도 자신을 왜 그다지도 믿는 것일까? 다소 비겁하지만 종교 탓으로 잠시 돌려보자. 오직 자신에 의지할 때 진정한 수행이 가능하다는 종교,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믿고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는 종교도 당연히 한몫 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경험이다. 때로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무력하고 이기적인 자신이지만 남에게 말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가능성이 높았던 무수한 과거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큼 사랑하는 존재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이 종교와 경험만으로 버틸 수 있는 사회인가.
믿을 수 없는 자신이란 존재를 믿어야 하는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오래 전 여기에 답한 사상이 있었다. 행동주의 심리학, 철학이다. 행동주의는, 자기 자신 대신 행동을 믿으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는, 결과로 이어지는 행동의 조건이 있을 때 비로소 나온다고 행동주의는 말한다. 열심히 하자고 아무리 결심해도 안되던 공부가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눈앞에 보이면 신기하게 죽어라 하고 싶어진다. 이를진대 자신보다는 자신을 공부하게금 만든 조건을 더 믿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열심히 삶을 살게 해주는 보상 중 으뜸은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돈이 되어버렸다. 그럴듯한 가치 명목으로 탈바꿈한 보상을 가진 체계를 두기는 하지만 그 다음, 그 다음에 다음, 이런 식으로 여러 단계를 건너가 저만치 앞에 놓인 것을 보면 결국 돈으로 수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행동주의 주장대로라면,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돈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여간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확대하면 인간의 목표와 존엄의 조건이 결국 돈이 되어 버린다. 비록 전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부분 돈이 삶의 목적 또는 심하게는 목표까지 되기 일쑤다. 이를 50여년전 고민한 사람이 있었는데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교수였다. 스키너박사는 인간의 조건이 결국 돈으로 귀결되어 버릴 것이라 어느 정도 예측한듯 하다. 보상으로부터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노예가 되기 일쑤고 그 끝은 결국 돈으로 수렴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 연유로 스키너박사는 행동주의의 숙제로 보상의 다양화를 깊이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토큰경제를 주장했다. 행동의 보상으로 토큰을 사용한다면 행동주의로 설계된 체계에서 다양한 보상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토큰은 지정된 사용처 또는 정해진 상품과 서비스의 구매에 사용되며 특정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 화폐인듯 화폐아닌 경제활동의 수단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쓸 수 있는 사용처, 상품, 서비스가 정해져 있지 않아 범용이다. 또한 화폐를 지불하고 받는 사람에게 제한을 두지도 않는다. 현재 화폐는 불법만 아니면 누구나 어떤 목적으로든 사용할 수 있다. 토큰은 다르다. 사용하는 목적과 사용자격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토큰 속에 들어가 내재되어 있다. 현재의 화폐는 커피, 빵, 항공권, 기차권 구매, 대학등록금 납부, 주식투자 할 것 없이 제약없이 사용할 수 있지만 토큰은 사용목적이 정해져 있어 토큰 속에 담겨 있는 목적으로만 특정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사용한다. 버스승차권 토큰, 기차토큰, 주식토큰, 교육토큰, 주택토큰, 농지토큰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토큰을 구매하는 화폐는 범용이다. 이런 성격으로 토큰경제를 가진 사회를 그려보면 미국 달러, 유럽 유로화, 중국 위완화, 한국 원화와 같은 모든 화폐는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로 대체되고 지금은 없는 토큰이 생겨 경제활동을 주도할 수 있다.
이런 세상은 분명 다가 오고 있다고 예상된다. 구체적인 실행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블록체인을 기반하는 암호화폐와 토큰이 경제질서를 송두리채 바꿀 것이라고, 관련 지식과 사회 현상을 관찰하면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예측된다. 탈중앙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블록체인을 지금 현재 권력형 국가들이 대비하고 있을 뿐 결국 큰 물줄기 흐름은 되돌리기 불가능하다. 현재는 과도기, 전환기이다. 새로운 물결과 싸워 지금의 체계를 지키고 있다고 판단하면 분명 도태될 것이다. 경제 선진국들은 이런 패러다임을 국가권력 속으로 최대한 흡수해 권력과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체제를 만드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토큰경제와 암호화폐로 이루어진 세계는 저항하고 비판하면서 거절가능한 선택 옵션이 아니라 적응해야할, 즉, 어쩔 수 없이 다가와 가까운 시기 옆에 함께할 세상이다. 그러니 경제질서 재편, 기후재앙 위기와 같이 익히고 적응해 가야하는 세상이다. 2030년 정도면 이미 큰 그림이 완성될 전망이다.
자신을 믿지 말고 대신 행동의 조건을 믿자고 제안한 50여년전 행동주의는 www가 만든 연결망 세계에서 그들이 예상하지는 못했던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암호화폐를 통해 그들이 주장한 토큰경제 실현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이 특정 부분만 본다면 스키너와 논쟁한 노엄촘스키의 의문의 1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