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단 Mar 13. 2023

영화’바빌론’ 디지털시대 환생한 무성영화

쉿! 목소리 낮추고 자막을 다세요

무성영화 속 스타는 말하지 않고 연기한다. 영화는 영상을 보여준 후 자막을 통해서만 말한다. 관객은 반응한다. 무성영화는 지금 인터넷 댓글과 정확하게 맥을 맞춘다. 무성영화는 유성영화에 자리를 내어주고 은막 뒤로 쓸쓸히 사라졌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대중은 더이상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은막 뒤 어딘가에서 무성영화 스타들이 다시 연기하고 인터넷 대중은 댓글의 자막을 단다. 이제 인터넷 디지털 시대다. 영화 ‘원스어폰어타임 인 할리우드(2019,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가 지키지 못해 할리우드에서 희생되었던 한 여배우를 영화에서 구해냈다면, 영화 ‘바빌론(2022,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비웃고 조롱해 죽음으로 몰아갔었던 무성영화 스타를 지금 시대 환생시키고 있었다. ‘원스어폰어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지켜준 여배우와 ‘바빌론’에서 할리우드가 버린 여배우란 두 역할 모두 마고 로비란 배우가 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막없는 예능은 없다. 오직 자막을 통해서만 예능의 유머와 의미가 전달되고 시청자 관객은 자막과 함께 움직인다. 대중은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예능프로그램의 자막은 작가가 쓴다면 유투브 방송의 자막은 관객이 단다. 디지털시대 사라진 관객을 불러온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무성영화였던 것이다. 대사를 소화해 낸 멋진 목소리를 내지 못해 비참하게 버려졌던 무성영화의 화려한 반전 복수가 시작되었다.


목소리 때문에 버려지는 무성영화 스타 ‘넬리 라로이(배우 마고 로비)’는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던 중 살모사 뱀을 발견하고는 차를 세운다. 자신의 연기와 목소리를 비웃은 사람들과 근육질 덩치들에게 말만 하지 말고 뱀과 싸우자고 말한다. 모두들 나서지 않자 그녀는 직접 뱀을 상대하다가 목을 물리고 만다. 아무도 그녀를 구해주지 않지만 영화의 자막을 넣는 ‘페이 주’가 뱀을 칼로 끊어 목숨을 구해준다. 뱀이 목소리를 내는 목을 물었고 무성영화에 자막을 다는 예술가가 목숨을 구해준 것은 목소리로 은유되는 가식적 지식과 형식에 자리를 뺏긴 무성영화의 환생을 상징한다.


영화란 거울을 통해 시대를 얘기하는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1985년 태어난 디지털 시대 태동을 함께 한 젊은 세대다. 그가 사라진 무성영화를 통해 헐리우드 추억과 사라진 스타들을 되살려 낸 것은 과거 화려했었던 영화들을 오마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바빌론’은, 디지털시대 생명을 다한듯 보이는 영화를 다시 살려내기 위한 위한 용기일 것이다. 그가 위플래시, 라라랜드 등의 성공 후에야 바빌론 작업을 꺼집어낸 배경이기도 하다.


작가가 써 준 대본을 자신의 목소리인냥 읽고 있는 모든 이에게 “쉿! 목소리 낮추고 자막과 댓글을 다세요”라고 영화 ‘바빌론’은 속삭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